1.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프루스트는 last name이 프로스트, 프루스트라 언뜻 들으면 같은 작가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다른 작가다. 아름다운 자연을 맑고 쉬운 언어로 표현했던 '가지 않은 길'의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1874- 1963)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국민 시인이다. 프로스트보다 3살 많은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 -1922)는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태어나 1909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며 오랜 칩거 생활을 시작한다. 천식 때문에 태양 광선, 거리 소음, 향수 냄새에 민감했던 프루스트는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서 침대에 누워 글을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
2.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다는 것이 도전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소설이란 것이 원래 1장을 넘기기가 제일 힘든 법이지만, 작가가 가장 공들였을 부분일 테니 흐름을 잘 따라가야지 생각했지만 나는 자꾸 길을 잃고 말았다. 읽다 접어놓은 부분을 다시 읽으려면 처음 뵙겠습니다가 되고, 그래서 다시 앞에서부터 읽기를 수차례.... 그러다 보니 흥미를 잃게 되고, 문해력에 대한 자책과 자기 비하에 돌입했다. 이 책에서 흐름이 끊어지니 자연스레 몇 권의 책을 번갈아 읽던 패턴도 스톱이 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나에게 고구마가 된 것이다.
3.
책을 덮자니 이 또한 쉽지 않다. 이 책에 대한 거창한 서사가 날 자극한다. T.S 엘리엇은 '율리시스'와 더불어 20세기 2대 걸작 중 한 편이라 말하며, 이들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없다 했다. 앙드레 모로아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다. 이 책이 있는데 과연 무엇을 앞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 알랭 드 보통은 '한 인간 삶의 가장 완벽한 재현'이라 평했고, '타임스'와 '르 몽드' 등 세계 유력 일간지에선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이 책을 꼽았다. 이쯤 되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될 책'처럼 여겨져 부채감까지 느껴진다. 명분과 오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행간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4.
이런 위대한 책을 나는 왜 쉽게 읽어 내려가지 못할까 자책이 들 때, 이 책을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는 독서고수들의 리뷰가 묘한 위로가 됐다. 이제는 집중력과 인내력이 관건이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기서 덮느냐, 그럼에도 계속 넘기느냐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읽다만 책이 쌓이면 재고 정리해야 될 물건으로 꽉 찬 창고가 된 기분이다. 프루스트의 문체가 만연체라 읽기 쉽진 않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감각을 따라 내가 가지 못한 곳을 경험해 보고자 한다. 13권 중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 스완이란 캐릭터에 물음표를 찍고 다시 첫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