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작심삼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내겐 작심이 삼일까지 갔던 적도 많지 않다. 미션만 세우는 대서 끝나버린 플래너 노트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내가 간만에 작심 3주를 넘어서고 있는 일이 하루 6000보 걷기다.
올여름은 올빼미들조차 새벽에 눈을 뜨게 하는 힘이 있다. 덥고 무거운 공기를 견디느니 몸을 세우고 밖으로 나가보자 해서 시작한 새벽 걷기. 휴대폰에 기록되는 걸음 수도 은근히 승부욕을 돋운다. 이쯤 들어갈까 싶다가도 어제보다 100보라도 더 걷자는 오기에 6000보가 7000보 이상이 되니 성취감이 덤으로 적립된다.
산책 2주 차부터는 코스를 변경해 봤다. 집 주변이 아닌 길 건너편 체육공원 숲길을 걷다 하상도로로 내려가 마음 내키는 곳까지 걷는다. 그곳에서 제대로 된 여름을 만났다. 여름의 랜드마크인 해바라기, 메리골드, 목천일홍이 군락을 이뤄 내 가슴팍까지 자라있었다.
매직 카펫을 펼쳐놓은 듯 강렬한 꽃들의 성장을 보니 '잼 카렛(Jam Kartet)'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고무산업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사용하는 '잼 카렛'을 번역하면 '고무의 시간'이란 뜻이다.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추출하려면 수액을 받아낸 뒤, 그것을 건조하고 응고하는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이때 화학적 응고제를 사용해도, 그 시간은 단축시키기 어렵다. 결국 고무를 얻기 위해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무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과정
수마트라 섬사람들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 닥쳐도 받아들이는 의미로 '잼 카렛'이란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번 생에 처음 맞는 더위처럼 호들갑을 떨 때 맨몸으로 여름의 열기를 받아들인 이 꽃들의 기다림에서 '잼 카렛'이 떠올랐다. 아무리 더워도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올 것이며, 지금 내 숨통을 쥐고 있는 듯한 문제도 견디면 또 지나갈 거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폭풍 같은 일도 그 시기를 잘 버티고 나면 내 삶의 나이테가 되었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서 배웠듯이. 오늘은 고단한 노동 속에서 얻어낸 수마트라 섬사람들의 소중한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