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리 May 26. 2019

혼자 안 읽고 떼로 읽는 이유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숱한 편식 중에서 그나마 고치기 쉬운 편식은 독서 편식이라고 생각해요.


먹기 싫은 거 억지로 먹었다가는 토하고 난리나는 음식 편식처럼 물리적으로 힘들지도 않고, 시간도 돈도 버리기 십상인 대인관계 편식처럼 기회비용이 크지도 않잖아요.


게다가 고친 후의 효용도 다른 것들보다 큰 편인 것 같아요. 넓어지는 식사 선택지, 대인관계 선택지도 물론 좋지만 지식의 확장이 그 중 가장 오래 가고 가장 실용적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독서모임을 합니다. 혼자서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책을 읽을 수 있거든요.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었나(<세계는 울퉁불퉁하다>), 중국이랑 미국이 왜 저렇게 싸우나(<예정된 전쟁>) 같은 것들이죠.


이번 책도 그랬어요. 거제도 조선산업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느냐에 대한 얘기라니. 평소의 저 같으면 아마 절대 안 읽었을 책입니다. 제가 조선산업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배를 만든다는 것과 조선왕조실록의 조선과는 다른 조선이라는 것과 모 기업 회장님이 거북선으로 이빨을 털어서 쥐뿔도 없는 상황에 배 수주를 받아왔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주 독서모임 책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였고, 대학원에서 공부한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저자의 동기가 황당했고(위장 취업?), 5년 간 조선 대기업에 종사하면서 쌓은 이해의 밀도가 단단했고, 내 나라의 다른 동네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입니다.


정말 그래요. 이런 류의 책들은 일단 알고 나면 내 옆에 항상 있었는데 그동안 공기처럼 지나친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줍니다. 아주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우리나라 조선산업 이대로는 안된다! 정도만, 그게 저기...우리나라 오른쪽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것 정도만 희미하게 알고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세계 1위를 지켜온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선박과 해양플랜트의 차이조차 몰랐던 제가 의장 설계가 대충 뭔지까지도 알게 되고, 스웨덴의 말뫼라는 동네가 어떻게 망해버린 조선산업을 딛고 다시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이 책 덕입니다. 제조업에서 하청 회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거제도가 무엇의 기반 위에 무엇을 이루어냈는지에 대해 프레임 정도라도 쌓게 된 것도 이 책 덕이고요.


독서모임은 좋습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랐던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점이. 알아야 하는 것을 오래 가고 깊게 가는 방식으로 알려주는 점이 좋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다들 독서모임 하세요.

두 번 세 번 여러 번 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