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철학, 지혜
학생 때, 아주 쿨한 선배가 있었다.
큰 키에 군살이 없고, 운동을 잘하고, 싸움도 왠지 잘할 것 같고(?) 눈매가 조금 매섭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적은 좋았고 도서관에 가는 걸 본적은 없지만 매일 밤마다 친구들이랑 술을 진탕 마시는 건 많이 봤다. 술을 참 좋아하는 선배였는데 내 술과 밥도 많이 사줬었다.
여느때처럼 별별얘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내가 훨씬 더 많은 걱정을 안고있을 때라 그 선배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선배는 걱정같은거 없어요? 마음이 참 편안해보여.”
“걱정? 그런걸 왜 해?”
오… 나는 벙찐 얼굴로 선배를 바라봤다.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할 수 없는 걸 지금 생각해봤자 해결되는게 있어?”
“아니…?? 없지…?! 근데… 그래도 걱정이 되는걸”
“그걸 하지 말라니까”
오… 그거 어떻게 하는거지?
당시엔, 신기한 사람이다 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됐다. 그 선배가 참 현명하고 똑똑했구나. 그 선밴 어떻게 그걸 알았지? 스물 몇살이었는데 말이다. 같은 20대였지만 그 선밴 ‘어른’같은 구석이 있었다. 혼자 훌쩍 떠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안했다.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바가 뚜렷했고, 뜻이 서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게 참 멋져보였다. 나는 내 마음도 잘 몰랐던 때였는데.
갑자기 이 선배 생각이 왜 났을까?
아마도 최근의, 지속되는 괴로움에 대해 생각에 잠겨있다 내 펜시브에 실마리로 두둥실 떠올랐던 것 같다.
동시에 잊고 있던 스토아철학도 떠올랐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이 선과 악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나머지는 다 중립이다.
내가 보고 들으며 그토록 미워하는 존재의 사실도,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나의 의견에 불과하다. 선악을 가릴 수 없을진대 내가 미워해서 무엇할까, 나의 착각일 뿐이지. 그러므로 우선 이 사건이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해야한다.
지금 내 괴로움의 근원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없다. 어떤 사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사람의 기준과 내 기준이 달라 내 자아는 이 기준에 저항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면 그 저항을 물리칠 수 있는가? 없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상대의 기준을 받아들이면 게임은 끝난다. 그걸 할 수 있는가? 너무 케케묵은 생각들이고, 이걸 일방적으로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부당하다고 느껴지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 자아가 어떻게 하면 이걸 수용할 수 있을까? 우선 저항하는 자아를 잠시 잠재워보자. 반감을 일으키는 다른 자아를 일단 지켜보자. 언뜻보면 내 자아에 큰 위험을 끼칠 것처럼 보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보이기도 하다.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자.
우선 내가 할수 있는 것들을 가려내고, 할 수 있는 것들은 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은 머리에 담아두고 있지 말자. 조금씩 정리해 클라우드에 동기화를 하고, 내 머리는 항상 잘 돌아가도록 여유공간을 남겨두자.
적어도 오늘은 동기화에 성공한 것 같다.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