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적
어느덧 12월입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한 해의 마무리라는 명목하에 미뤄두었던 술약속을 다시 잡거나, 없던 모임도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합니다. 송년회, 신년회, 종무식 등 다양한 행사들이 이어지죠. 개중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12월의 행사를 들자면 크리스마스일 것입니다.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하죠.
우리나라에 크리스마스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0년대 개신교 선교사에 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의 선교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알렸을 것이라는 설이 있어요. 알렌은 갑신정변甲申政變(1884)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閔泳翊(명성황후의 조카)을 치료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왕실 소속의 의사 겸 고종高宗(조선 제26대 왕·대한제국 제1대 황제, 재위 1863~1907)의 정치고문 등으로 활동하면서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인물이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크리스마스는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학당에서 점차 바깥으로 퍼져나갔어요.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튼Scranton, M.F. 여사는 1886년 12월 24일에 학생들을 위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으며, 배재학당을 설립한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 H.G.는 교회에서 산타클로스 역할을 맡아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었죠.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어 크리스마스를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했습니다.
내일은 예수 크리스도에 탄일이라 세계 만국에 큰 명절이니 내일 조선 인민들도 마음에 빌기를 조선 대군주 폐하께와 왕태자 전하의 성체가 안강하시고 나라 운수가 영원하며 조선 전국이 화평하고 인민들이 무병하고 부요하게 되기를 하나님께 정성으로 빌기를 우리는 바라노라.
「독립신문」은 이듬해인 1897년 12월 23일에 이날을 세계 만국이 기념하며 일을 쉬므로 신문도 출판하지 않겠다는 글을 내어 성탄 문화를 주체적으로 향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다시 1년이 지나 1898년 12월 27일자 「대한그리스도인회보」를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국내 기독교의 주요 축일로 자리 잡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 성 안팎에 예수교 회당과 천주교 회당에 등불이 휘황하고 여러 천만 사람이 기쁘게 지나가니 구세주 탄일이 대한국에도 큰 성일이 되었더라.
1930년대 중반까지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만이 즐기는 종교행사의 의미를 넘어 많은 사람이 즐기는 하나의 풍속이 되어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선물을 교환했어요. 평소 교회를 가지 않던 이들도 이때가 되면 교회가 준비한 ‘성탄극’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죠.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등장한 것도 1930년대입니다.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온 캐나다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1932년부터 1940년까지 추진한 사업으로, 그 취지는 결핵 퇴치기금을 모금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일제는 씰에 그려진 거북선이나 금강산 등을 트집 잡으며 사업을 탄압했어요. 이 정도면 뭔들 탄압을 안 했겠느냐 싶네요. 급기야 셔우드홀이 스파이 누명을 쓰고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크리스마스 씰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띄며 무르익던 크리스마스는 1937년 러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일제의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일제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전면 중단시켰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군에 크리스마스 위문품을 보내게 했어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어둠의 나날을 보내던 이들에게 그나마 몇 안 되는 위안의 날이었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문화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미 군정에 의해서였습니다. 미 군정은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1945년 9월부터 실시했던 야간통행금지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해제해 주었어요. 이승만 정부 역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유지하였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경우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닌 것을 볼 때, 한국의 크리스마스가 갖는 특수성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종교와 상관없이 한 해의 마무리를 알리는 상징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그 주요 타깃인 ‘커플’ 마케팅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죠. 그 본래 취지와 동떨어져 지나치게 세속화된 모양새가 밸런타인데이·핼러윈데이와 유사합니다.
현재 국내 정세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45년 만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들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제정세가 한국의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임기가 27년 5월까지 한참 남았던 현 대통령은 국정운영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여당과 야당은 복잡한 정치셈법 속에 각자의 목소리만을 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4년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언제나 그랬듯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