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데일카네기 자기 관리론
나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어려웠던 눈앞의 문제가 아니다.
과한 노동으로 인해 몸이 피곤했던 것도 아니다.
상사의 짜증과, 마감일이 주는 압박감도 아니다.
난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 그리고 오늘 할 수 있었던 것을 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권태로움에 빠져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사소한 실수와 실패들은 완벽하지 못한 계획과 노력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고 하는 오만함과,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노력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프레임이 나에게 맞지 않는 목표를 세우게 만들고 결국 실패로 안내한다.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린 돈과 인정이 과연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완벽한 독립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또한 그들의 줄 세우기와 그들이 만드는 경쟁구도, 거기서 오는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의 사는 이유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든다.
세상이 정한 삶의 이유가 정말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는 왜 사는 거인가?
마찬가지로 이유는 없다.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과정은 우리를 끝없는 번뇌로 이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즐길 수 있다.
게임이란 인간의 삶의 본질 혹은 유희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만든 인생의 복제본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우리가 만든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유한성과, 실제로 일어나는 고통과 쾌감 때문이다.
즉 우리는 '객관화'가 불가능 해진다.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서는 게임 캐릭터와 나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퀘스트이자, 사회가 주는 믿음 그리고 프레임 속에 갇혀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태도는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즐거움과, 나라는 객체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내리게 돕지 못한다.
물론 운이 좋게도, 사회에서 정한 노동과 보상으로 충분한 행복을 느끼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더욱 많아야 사회는 유지가 될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재밌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혹은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그러한 제도와 체계에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개체는 태어난다. 정확히는 인간 모두가 그 회색 지대에 존재하지만, 어떤 경험과 생각을 하느냐가, 어느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지를 결정한다.
난 즐거움을 위해 사회 제도에 반항하고, 일하는 직장을 나오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에서 정한 제도를 따라가든, 그러지 않든, 우리는 삶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걱정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더 깊은 늪에 빠진다.
벗어나는 방법은 지금 당장 이 순간과, 오늘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없다. 노력과 재능이 있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운이 차지하는 영역을 우리가 채울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하지도 재능을 계발하지도 않는다면 운또한 들어오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성공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노력과 재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생각이 반복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절망과 경쟁을 부추길거고, 각자의 행복을 찾기보다는, 끝없는 챗바퀴를 굴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 글은 보여주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우울과, 권태에 빠질 때, 그리고 삶에 대한 걱정과 후회로 가장 귀한 오늘을 망치고 있을 때
잊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한 편지이다.
삶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말자.
하고 있는 일에 즐거움을 찾고,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자.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선의 공략책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라.
그리고 그 과정자체를 즐겨라.
이게 이제 막 나태함에서 벗어난 내가, 어제의 나태했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오늘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