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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 Jul 10. 2019

그리다.

내가 당신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를 내 손으로 담아내기 위해서 작은 종이를 펼쳤다.

사랑했던 연인을 그리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부모님의 얼굴을 그림에 담아낸 적이 없었다.


동생에게 부탁해 부모님의 사진을 앨범에서 찾아내어 보내라고 했다.


내 카톡에는 부모님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언젠가는 그려봐야지 그려봐야지 하고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깜빡했던 그 일을 떠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냥 여러 장의 사진을 뒤적거리며 아버지의 모습을 뒤졌다.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계신 사진이 보였다.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고 항상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사람이었다.

그가 밥을 먹을 때에는 대부분 침묵의 시간 속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일 때가 많았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가족과 식사하는 시간을 기다렸을 그였겠지만 언제나 대화보다는 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 행위에 더 집중하는 듯했다.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어 보는 그의 사진에는 주름이 깊게 파여있었다.

여전히 사진 속에서도 어린 시절 봐온 그의 모습처럼 침묵의 시간 속에서 숟가락과 젓가락만 분주히 움직이고 있음이 보였다.


휴대폰 속에 그의 모습을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 번도 그리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었다.


낯설었다.


이마의 주름 하나.

훤하게 드러난 이마.

턱에 듬성듬성 보이는 흰 수염.


선 하나 하나로 그의 모습을 옮기기 시작했다.



엷은 연필의 흔적이 하얀 종이를 스치면서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귀에는 늘 듣는 플레이리스트지만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도 모르게.

왼손에는 그의 사진이 담긴 폰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분주히 옮기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언제 그를 이렇게 오래 쳐다본 적이 있었나.


왼손에 들려있는 그의 모습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훤하게 드러난 이마에 주름을 한 줄 한 줄 옮기는데 오른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그냥 힘이 빠졌다.

그냥 툭하고 힘이 끊긴 기분이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나는 사고뭉치였다. 고3 수험생 일 때는 학교를 가지 않기 위해, 군대도 여행도 거의 모든 일의 의사결정을 혼자 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아들이 쳤던 사고를 수습하느라 남들보다 나은 가장은 아니더라도 남들 만큼은 해보려고, 제대로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 말 한마디가 또 자기 자신을 무너뜨릴까 봐 꾹꾹 참아가면서 그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그의 주름들을 만들었겠지.

좋았던 기억은 없다.

항상 과묵한 그와는 늘 신경전이었다. 아니 신경을 안 쓰려고 서로가 노력했던 것 같다.


왼손에서 그리고 오른손에서 힘이 툭 끊긴 것 같은 느낌에 그의 모습은 다 옮기지 못했다.


결국엔 다 그리지 못하겠지.



잠시 멈춰 울고 싶지만,

내가 당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울고 싶어 졌지만,

그 상황을 다시 써 내려가는 지금도 울고 싶지만,

늦은 밤 주황빛 아래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고 싶지만,

그냥 아들이라고 말해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나무 듣고 싶지만,



아버지.

제가 당신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죄송합니다.

당신의 주름 하나에 제 걱정 하나라고 생각하니 주름이 자글 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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