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 2025.08 회고글
직장 생활을 한 게 햇수로 8년이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크고 작은 성취를 맛보기도 했다. 성취의 맛은 짜릿했다. 그 짜릿함에 취한 나머지, 벗어나고 싶은 인고의 굴레에 스스로를 계속 밀어 넣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까지만'이라는 주문을 되뇌며 버텨봤지만, 결국 그 끝에 도달한 결론은 '나는 사회 부적응자이다'라는 자아 성찰이었다.
겉으론 무던해 보이는 성격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시야에 걸리는 수많은 사건들은 날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다. 남들이야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작은 일에도 나는 불의를 느꼈고, 불의는 분노로 이어졌다. 분노는 분쟁을 만들었고, 결국 부러지는 건 언제나 나였다. 개인은 절대로 조직을 바꿀 수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주변 사람들에게 작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뿐. 숭고하고 멋진 일이지만, 성에 차진 않았다. 나는 더 큰 가치의 실현을 기대했다.
거대 담론과 부딪히려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돈키호테처럼. 그러다 문득, 내가 부딪히려 했던 모든 괴물들이 사실은 내 안에만 존재하는 허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많은 것이 잘못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커리어를 한 번은 크게 틀어야겠다 생각한 변곡점이다.
여러 회사에서 같은 사이클을 반복하니 '이제는 진짜 내 사업을 해야겠다'라는 결론에 닿았다.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세상에 크고 엄청난 업적을 남기겠단 야망도 아니다. 그저, 나만의 옳음과 정의가 실현되는 작지만 확실한 유토피아를 원했다. 좋게 풀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실현되는 조직을 만들겠단 열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피다. 사회생활에서 느낀 염증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는 피로감의 발현. 그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조직은 없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기롭지만, 나는 아직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된통 당하는 중이다. 다행히 포기하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내 상태는 '아직은 아니지만, 이루어가는 중'이다.
'내 것을 하자'라는 목표로 몇 달을 움직여봤고, 결과적으론 실패했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속과 신분만 바뀌었을 뿐이지 여전히 남의 일을 위해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 돈은 좀 벌었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와 멀어졌다. 금액을 떠나, 내가 원하는 구조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난 3개월은 나에게 실패 경험이다.
하지만, 배운 게 많다. 수차례 되뇌며 마음에 새겼고, 이젠 글로 기록해 둔다.
회사에선 아무리 싫어도 일이 들어온다. 그 일들을 잘 처리해 내면 인정과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중력을 가져 더 많은 일을 끌어당긴다. 그러니,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과 주어진 일들을 잘 처리해 내는 것뿐이다. 이 둘은 서로 상보적이다.
하지만, 조직을 벗어나면 일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 일을 잘 해낸다고 더 많은 일이 중력처럼 끌려오지도 않는다. 조직에 있을 땐 몰랐지만, 모든 일의 근간은 영업이다. '일을 가져오는 것'부터가 일의 시작이고, 그래서 자기 일을 하려면 같은 일이더라도 최소 곱절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나는 이 점을 간과했다.
가만히 있으니 정말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일 할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회사는 급여가 고정이고 일이 변수라, 일이 없어도 계약된 돈을 받을 수 있다. 조직에서 일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건 장기적으로 위기지만,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진 않는다. 때문에, 조직은 아무리 힘들어도 사실은 우산이다.
하지만, 사업은 다르다. 일을 많이 받으면 천장 없이 보상을 키울 수 있지만, 반대로 일을 잡지 못하면 보상은 0이다. 이건 사업이 갖는 구조적 특징이고, 필연적으로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수반한다.
거의 매일을 다음 달 내가 벌 수 있는 돈이 얼마일지 예상해 보며 노트에 적었다. 그날의 감정 상태에 따라 희망차기도, 절망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늘릴 수 있지?'. 그런 고민들은 언제나 뒷맛이 좋지 않았다. 한숨으로 노트를 덮으며 '안 되겠다, 뭐라도 하자'라는 결론으로 회귀했다. 불안했다. 불안은 뇌를 마비시켰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만들었다. 조급했다. 나는 페이스를 잃었고, 허우적거렸다.
부정적인 감정을 잘 통제하는 법을 몰랐던 것은 나의 가장 큰 패착이다. 사업이라는 건 구조적으로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다. 사업 여정에 발을 들인 이상, 불안한 감정을 잘 통제해 내는 건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숙제다. 앞으로의 성과와 지속 가능성은 이 숙제를 얼마나 잘 해결해내는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안한 감정에 대해 좀 더 깊게 파헤쳐봤다. 사업이라는 메커니즘이 갖는 구조적 특성이 원인이다. 필연적으로 따르는 감정이다. 하지만, 불안을 나름대로 잘 헷징 하기 위한 방법은 있다. 바로, 욕망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파고다. 그래서, 더 큰 욕망을 가질수록 일상은 더 크게 요동친다. 바라는 게 많지 않으면 작은 성취에도 감사하고, 다음 실행을 위한 힘이 생긴다. 하지만, 욕망이 큰 사람은 아무리 큰 걸 얻어도 자신의 바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항상 뭔가를 더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쉽게 지쳐버린다.
욕망의 크기가 너무 작아도 문제다. 결핍은 성장을 위한 동력이고, 욕망이 작은 사람은 정체된다. 그래서, 욕망의 크기를 적정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한 감정이 자아를 삼켜버리지 않으면서, 더 성장하는 내일이 되기 위한 적정 수준의 욕망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난 3개월 동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욕망의 크기는 지금의 내가 실현하기엔 너무 큰 것이었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면 못 할 이유도 없다 생각하지만, 3개월 안에 결판내기엔 너무 큰 사이즈였다. 그래서 불안한 감정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바라는 건 100인데 지금 내 현실은 잘해봐야 10 정도이니, 90의 압박감이 매일의 내 삶을 짓눌렀다. 그게 내 두 번째 패착이다. 나는 단기간에 너무 큰 것을 바라며 움직였다.
모든 성장이 그렇듯, 사업의 성장도 계단식인 게 당연하다. 그에 맞게, 내가 갖는 욕망의 크기도 적정 수준으로 출발해 조금씩 늘려가야 한다. 내가 가진 궁극의 비전을 잘게 쪼개 현재의 내가 달성 가능한 수준의 작은 욕망 조각으로 치환하는 것. 사업을 하기 위해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숙제다. 나는 욕망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아침에 눈을 뜬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조급한 마음에 잡아둔 많은 일들이 칸반 보드를 가득 채우고 있다. 머리가 하얘진다. 어떤 일을 어떤 순서로 처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눈앞에 즐비한 수많은 일들을 감히 내가 다 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 갑자기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도망치고 싶다. 최근 두 달을 매일 같이 반복했던 내 하루 감정 루틴이다.
강도 높은 감정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다 해내기 위해선 루틴이 필요하다. 감정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주어진 시간엔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너무 많았다. 내 삶엔 규칙이 없었고, 그만큼 자유로웠지만, 그 자유가 또한 불안한 감정을 강화했고, 내 사고를 종속시켰다. 규칙 없는 자유는 결과론적으로 가짜 자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주어진 일을 다 해냈다. 그 과정이 꽤나 괴로웠다. 이런 식으론 지속성을 갖기 힘들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감정의 상태나 상황에 상관없이 매일 반복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규칙이 필요했다.
감정이 좋든 싫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일을 규칙적으로 해내는 건 생산성의 선결 조건이다. 감정에 따라 변동성이 큰 하루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걸 방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는 생계를 위한 우산이기도 하지만, 생선성을 위한 안전 고리이기도 하다. 강제성이 폭력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자율적으로 규칙적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한 셈이다.
나는 스스로를 충분히 자기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별도의 안전고리 없이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자만했다. 그게 내 세 번째 패착이다. 인간은 나약한 동물이다. 때문에, 독한 마음으로 체계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 나 또한 감정에 너무 쉽게 매몰되고 져버렸다.
자유롭더라도 그 안에 나름의 규칙을 정해두는 것과 무법의 상태를 방관하는 건 명백히 다르다.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내야만 하는 나만의 규칙과 체계를 만들어내는 건 하루빨리 달성해야 하는 중요한 숙제다.
사업의 이유가 돈이라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생각은 좀 더 강화됐다. 하지만, 가치의 실현이 목표라면 그에 부합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냐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난이도가 더 높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쌓이는 게 전혀 없지만 당장 돈이 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 대부분을 뺏기는 상황이 빈번해진다. 돈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때문에, 근시안적인 선택인 것을 알면서도 내 삶의 불안을 좀 더 레버리지하고 싶다는 유혹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반복되는 건 장기적으로 불리하다. 돈은 벌었지만 쌓이는 게 없는 일을 하는 건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된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가치의 추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에게 쌓이는 일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일을 꾸준히 함으로써 조금 더 사업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당연히 돈은 필요하다. 때문에, 당장 돈이 되는 일과 앞으로 내가 추구하려는 가치에 닿아있는 쌓이는 일의 비율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사업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줄다리기이고, 내가 바라는 이상이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이상이 뭐고, 그 이상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쌓아가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 버는 돈이 조금 줄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적정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결정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지 못했던 게 네 번째 패착이다. 나는 단기적이고 소모적인 일에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의 삶이 더 좋다. 물론, 지난 3개월 동안 한 경험을 통해 조직 생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오히려 덜어진 것도 맞다. 세상은 잔혹하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여러 방식 중 괜찮은 회사를 찾아 자신을 귀속시키는 건 좋은 선택지다. 안정감, 성장할 수 있는 과제, 여러 좋은 사람과의 관계도 기대할 수 있다. 회사는 여러 의미로 온실인 걸 나와보니 더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탈조직의 삶이 더 좋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점이 핵심이다. 실패에 대한 책임도 무한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도 전부 내 거고, 성공의 결과도 내 거다. 나 스스로 내가 한 결정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라는 게 무한한 두려움을 주지만, 동시에 엄청난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역설적이다.
어떠한 방어막도 없이 스스로의 민낯을 계속 마주하게 되는 것도 너무 괴로운 일이다. 나의 부족함, 결핍, 불완전함, 나태함, 기타 등등.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과 습관들이 계속 확인되고, 그때마다 나는 좌절한다. 하지만, 그런 민낯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더 큰 성장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나와 내 사업은 더 나아질 일 밖엔 없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한편으론 설레기도 한다.
회사라는 우산 밑에만 있었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고독한 감정과 실패 경험이 나에게 생겼고, 마냥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그만큼 난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성장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배움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다. 처음 신입으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 가졌던 도전자의 마음이 오랜만에 다시 끓어오른다. 지금의 나는 어떤 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고 초라해 보이지만, 언젠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다. 그 각오를 새롭게 다져본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잘해나가다 보면 분명 나는 어떠한 곳에 닿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내 삶의 모습은 '아직은 아니지만, 이루어가는 중'이라는 가치관에 잘 맞는 것 같다. 이러한 삶을 더 오래, 지속 가능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