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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4. 2021

하루하루 벽돌을 쌓아가는 중

'지금 당장 100억이 생긴다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하겠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 대답은 결단코 '아니오'다. 나한테 있어서 일은 그저 돈을 벋기 위한 수단인 것만은 아니다. 분명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잃게 되는 건 단순히 경제적 안정성뿐만은 아니다. 일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성장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또한 관계의 터이고, 살면서 한 번쯤 이루고 싶은 이상을 실현해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돈이 얼마가 있던지 상관없이 일을 할 것이다. 일은 분명 내 삶을 건강하게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큰 축임에 틀림없다.


동일한 질문을 살짝 틀어보자. '100억이 생긴다면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그 일을 계속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속 시원하게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이 일을 완벽하게 사랑합니다'라고 답하지는 못할 거 같다. 


분명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꽤나 만족하고 있고, 이 일을 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이 나의 천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물론, 가끔은 재미를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완벽하게 결이 같지도 않다. 


싫어도 해야만 하면 하는 게 일이고 사회생활이라지만, 나는 현실에 발맞춰 살아가기보다는 좀 더 큰 삶의 이유와 의미를 쫓으며 살아가고 싶은 이상주의자다. 그런 마음에서, 좀 더 내가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가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설령 그것이 돈을 조금은 덜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또 막상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면 당장 눈 앞의 현실이 내 앞을 가로막아서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나는 일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충만하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오히려, 책임감과 부담감에 짓눌려 허덕일 때가 훨씬 더 많다. 당연히 지금 당장이라도 좀 더 재밌고, 보람 있고, 의미와 가치가 충만한 일을 찾아서 그걸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1. (아직은) 무지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모르느냐? 크게는 두 가지다. 


첫째, 나는 나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른다. 근 30년 동안 이 몸뚱아리 하나 끌어안고 살아오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 쉽게 좌절하게 되는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나만의 굳은 신념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야 나 스스로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게 서질 않는다. 어렴풋이나마 그려놓은 장밋빛 미래의 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설령 그것이 실제가 된다고 한들 내가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사실 자신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게 그게 정말 맞나? 그 일을 하면 행복해지나?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안주한다. 지금 하는 일이 미친 듯이 좋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끔찍하게 괴롭거나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 건 아니기에. 그냥 지금 현재의 생활을 그럭저럭 잘 유지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라고 쉽게 타협해버리고 만다.


둘째,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기회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지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우물에만 갇혀있을 뿐이다. 


세상에 대한 견문도 넓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의 폭도 늘리다 보면 분명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 때 더 행복할지에 대한 보다 좋은 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안정된 삶의 토대를 박차고 나가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 근데, 안정의 둘레를 벗어나는 어떠한 행동을 결심한다는 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겁도 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망설여진다. 마음 같아선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들을 꿈꾸고 기획해보고 싶지만, 그 길이 돌다리가 맞는 것인지 한참을 두들겨보다 결국은 한 걸음도 떼보지 못하고 현재 자리에 박혀있게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 (아직은) 무능하다.

중고등학교 때는 나름 공부를 곧잘 했다. 똑똑하다고 인정도 꽤 받았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나보다 머리도 좋고, 경험도 더 많고, 잘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매일을 그런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깨치며, 한참은 부족하기만 한 내 실력에 대해 나도 모르게 자책하곤 한다.


이 실력으로 어딜 가서 뭘 하겠냐는 생각이 들 때면 좀 더 대단한 일을 해보기 위해 움직여보고자 하는 각오와 다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나는 아직 내 분야에서도 전문성이 부족하다. 지금 속해있는 조직에서도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어떠한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특출 나게 잘난 나만의 무기가 있는 거 같지도 않다. 꾸준히 발전하고 성장해가고 있기에 언젠가는 분명 나만의 전문 분야가 만들어질 거라고 기대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때문에 보다 의미 있고 재밌을 거 같은 새 일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게 망설여진다. 결국, 무엇인가 원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바탕이 되는 실력과 전문성이 필요한데, 그게 나한테는 아직 없는 거 같아서. 또한, 더 크고 엄청난 일을 하고 싶어 할수록 그만큼 더 견고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큰 야망이나 꿈을 쉽게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유혹이 된다.



3. (아직은) 무섭다.

나를 잘 알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더 많이 배우며, 내 실력에 확신을 가지기 위한 모든 과정은 전부 다 일정 수준 이상의 Risk-Taking을 요구한다. 내가 현재 디디고 있는 삶의 토대에 안주해서는 절대로 새로운 일의 보람과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당장 이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한다는 게 보통 부담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그 부담감은 더 커져만 간다.


철 없이 어리기만 했던 학창 시절에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그리고, 그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대통령이 되고 싶기도 했고, 발명가도 되고 싶었다. 외교관을 꿈꿨던 적도 있고,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꿈들을 접은 지 오래다. 성인이 되면서 그 삶이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수고와 인내를 마땅히 다해낼 자신이 없는 것도 큰 거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로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현실'이라는 아주 깊은 웅덩이다. 더 나은 세상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 깊은 웅덩이에 한 번은 깊게 빠져 허우적거려야 한다. 그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나면 그제야 아주 자그마한 기회가 곁을 내준다. 그런 인내와 연단의 시기가 없이는 결국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이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시도조차 망설여진다. 맞다, 나는 겁쟁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현실에 안주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천직'인 일을 정말 찾고 싶고, 그런 일을 실제로 하면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놓치고 싶지 않다. 때문에, 나 스스로를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일에 붙들어 매고 있는 각종 이유들 앞에 '아직은'이라는 조건부를 달아놓았다. 소심하게 괄호 쳐놓은 (아직은)이라는 단어에는 언젠가는 이 모든 제한점들을 극복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으로, 좋든 싫든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들에 내가 쏟을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 일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매일의 과업과 과제들이 앞으로 내가 가져가게 될 긍정적이고 행복한 커리어들을 쌓아가기 위한 벽돌이기 때문이다. 좀 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주어진 과업들을 잘 해결해 나간다면 좀 더 단단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더 보람 있고 좋은 일을 할 내일의 내 모습을 그리며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오늘의 일들을 꾸역꾸역 감내하고 있는 중인 셈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유보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답답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퇴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지금 당장의 행복과 만족을 위한 선택들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는 요즘 세대의 트렌드에 비춰봤을 때, 뭐 그렇게까지 간절하고 진지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냐는 물음이 들 수도 있을 거 같다.


그에 대한 내 답변은 이 글 서두에 밝힌 내용으로 회귀한다. 나한테 있어서 일은 그저 돈을 벋기 위한 수단인 것만은 아니고, 분명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성장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에. 또한 관계의 터이고, 살면서 한 번쯤 이루고 싶은 이상을 실현해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일을 대하는 매 순간의 태도가 진지하고 심오하다.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는 특별하다. 그래서, 조금 힘들고 싫어도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내는 중이다. 그렇게 책임감 있게 살아낸 오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나는 분명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행복한 삶의 거름이 되는 일에 조금은 더 가까워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마음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나는 계속 일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마음으로 일터에서 빈번히 차오르는 순간의 부정적 감정들을 잘 추스르고 견뎌내 보려고 한다. 단기에 당장 바뀔 건 없다. 길고 지루하겠지만, 그럴수록 꾸준함과 성실은 빛을 발한다. 그 신념을 잘 지켜내면서 앞으로 더 파이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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