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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 멀리 반짝이는 별 Oct 12. 2021

40대가 되어도 달라진 게 없다



내 나이는 정확히 마흔 살. 생일에서 몇 개월을 지나왔지만 아직 마흔 한 살보다는 마흔 살에 가깝다. 솔직히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원하는 분야로 이직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러 나갔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되돌아와서 엉뚱한 곳에서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고 늘 화가 난 상태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좌절은 했어도 화는 낼 이유가 없었는데,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그 흔한 연애를 할 마음도 전혀 없었다. 

마음을 추스러서 공부도 하고 결혼할 결심도 하고(하지만 끝내는 잘 되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분야로 돌아와 다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가 30대 중반이었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친구들에 비해 나는 한참 뒤쳐진 생활을 하고 있었고, 하루하루 주어진 과제들을 처리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뭘 해내야지, 남들만큼은 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자리 잡는 일이 힘겨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40대로 접어드는 시기에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어디 한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했고 늘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무기계약직이라며 준 정규직이라고 타이틀을 달아줬지만 어쨌든 나는 정규직이 아니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고될지 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쓰디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결혼도 안 했다. 결혼 근처까지 갔다가 좌절된 이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연애를 안 하고 있다. 연애의 꿈을 접은 것은 고용의 불안함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안정된 직장을 잡게 되면, 그 때 꼭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 여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남편도, 애인도 없고 안정된 직장이 없으며, 집도, 자동차도 없다. 남들이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로 엄청난 돈을 쓸어담는다고 할 당시 나는 원룸에서 재택근무를 하다가 우울증까지 겪게 되어 병원 신세도 졌다. 


서른 아홉살의 12월은 정말 혹독했다. 그렇게 우울증 약을 씹어 삼키면서 마흔이 되어야 했다. 우울증 약이 묘한 것은, 예민한 신경을 무디게 눌러주고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해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렇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현실에 변화란 전혀 있을 수가 없었다. 약기운을 빌어 착각하며 살아야 할만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상황은 그러했다. 나는 당장 우울증 약을 쓰레기통에 버렸고 몽롱한 약기운에서는 단숨에 벗어났다. 뚜렷한 목표나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쾌한 상황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40대가 되면', '40대에 해야 할' 등등 으레 이 나이대에 접어들면 이러해야 한다는 글들을 많이 접한다. 내 가정을 꾸려서 아이 교육은 이렇게 소화하고, 최소 과장, 차장급은 되어 있어야 하며, 안정된 직장에 급여의 몇 퍼센트는 저금을 하고 대출을 받아 자가도 마련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화내는 꼰대는 되지말고 후배들에게 멋진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야말로 '슈퍼' 어른이 되어 있으라고 주문한다. 이 같은 이야길 풀어내는 것은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40대의 모습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데, 그럼에도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냥 부족하게 여겨져 불행했던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 10년 사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마음고생을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끝내는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했지만, 나는 더 이상 화가 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40대가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미혼으로, 지난 몇 년간 그나마 안정적인 급여를 받아 만족을 하며, 혼자 살면서 겨우 저축하는 게 다행인 그런 삶도 있다. 연애에 대한 낭만은 잊어버린지 오래고, 회사와 집을 오가며 업무에 임하면서 하루하루 마음 다칠 일만 없길 바라는 삶. 너튜브에서 강아지, 수달 같은 동물들을 찾아보며 안정을 찾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다. 

10년간 무엇을 해서 어떤 결과가 되어 50대가 되면 이렇게 되어야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 나이대에 걸맞는 모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삶은 삶일 뿐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40대의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딱 한 가지는 바로 그 점이다. 씁쓸하지만, 내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삶은 견디는 겁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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