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니아의루시 Apr 28. 2022

쫄보의 운전연수 그리고 부모수업

운전으로 배우는 인생

일단 나의 운전 역사에 대해 얘기를 해보겠다.

나는 스물두 살 겨울에 서울로 픽업을 오는 봉고차를 타고 다니며 양주의 허허벌판까지 가서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렇게 나름 고생을 해서 딴 보람도 없이 그 후로 장장 10년 동안 장롱면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2016년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 해에 남편이 군입대를 위해 훈련소에 들어가야 해서 4개월 정도 집을 비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해야겠다 마음만 먹었는데도 겁이 났다. 하지만 운전을 해야 육아가 수월하고 내가 살겠다 싶어서 조금 과장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연수를 시작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운전을 안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지금 생각하면 운전을 시작한 것이 내 인생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일이라도 내가 절대 스스로 못할 것이라 여겼던 그것을 해내고 난 후의 자존감 상승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군입대 전 제주 한달살이를  계획했고 연수를 받기에는 서울보다 훨씬 여건이 좋았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남편에게 틈틈이 연수를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끼어들기에 자신이 없어서 백미러 가운데에 점선을 긋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클락션이 나를 향해 울리는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을 남발해가며 서울에 올라와서도 이런저런 요란을 떨면서 운전을 배워나갔다.

쫄보 한 명 드라이버 만드느라 남편이 고생 좀 했을 것이다. 그는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이 되자 남편이 옆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운전실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옆에 있으면 아무리 내 운전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마음이 저절로 남편에게 의존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순간적 판단도 없을 때 보다 잘 안 되고 내비게이션 보는 능력치도 떨어졌다.


남편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옆에 의존할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로 내 정신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쪽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없을 때는 훨씬 멘탈이 명료해지고 판단도 빨라지고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도 생각보다 잘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없어야지만 할 수 있는 (쫄보의 소심한) 실수와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인생도 아이 키우는 것도 운전 배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가 아이에게 인생이라는 운전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선 최대한 열심히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규칙을 잘 지키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이때 부모의 미덕은 언젠가는 운전대를 아이에게 전적으로 내어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이가 처음 혼자서 운전을 시작할 때는 부모가 얼마간 옆좌석에 앉아 지켜봐 주다가 아이를 위해 아직 미덥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차에서 내려줘야 한다. 특정 시기에는 부모가 완전히 빠져줘야 하는 것이다. ​

그래야 아이가 명료한 정신으로 자기의 인생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시작한다. 실수로부터 배울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어느 순간 성숙한 운전자가 된 아이는 이제 가끔 자신의 부모를 태우고 부모보다 더 능숙하게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록] 대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