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연대기

내 오랜 친구 우울증에 관하여

by 조금



‘우울증‘


나는 우울증과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울증에 인지망각증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내 정신이, 마음이, 신체가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그것이 잘 못 되어 가고 있다고 인지 조차 하지 못하는 게 우울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에 첫 중증 우울증은 ‘여행 후유증’이었다. 대학생 시절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친구들과 2주 간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정말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직후에는 남은 방학 동안 내내 집에서, 방에서 은둔 생활을 보냈다.



캐리어는 여행을 다녀온 지 1달이나 지난 후에도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했고, 집에서 컴퓨터로 아이돌 덕질에만 몰두했다. 극심한 우울증 증상이 늘 그러하듯 그때 당시의 기억은 흐릿 하지만 방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캐리어와 내 땀과 피지에 절은 이불의 누릿한 냄새가 기억난다. 머릿속에 현재는 사라지고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과거에 대한 후회로 점칠 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아주 손쉽게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무기력에 휩싸였던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해외여행에서 받은 강렬한 도파민 자극으로 인한 부작용이었던 것 같다.



그이후에 중증 우울증이 재발 했을때는 나르시시스트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치닫는 시점 이었다. 전 남편의 가스라이팅과 통제로 인하여 나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렸다. 전남편은 우울증 진단을 받은 나를 향해 잘잘못을 따지며 비난을 퍼부었다.


“우울증 걸린 게 내 잘못이야? 넌 잘못한 게 없어? 게을러터진걸 우울증 탓하지 마 “


전 남편도 내심 본인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예민하게 발끈했던 것 같다. 지지라던가 위로는커녕 전남편은 나를 “정신병자” 라며 손가락질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죽음 거의 끝까지 락까지 왔던 상황이었다.



전남편의 말처럼 정말 나는 최악의 전업 주부였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먼지가 쌓여 있으며 옷과 아이의 장난감 책들은 여기저기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었고, 설거지는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남편이 퇴근하기 전 한두 시간 정도 바싹 집안일을 하곤 했는데 한두 시간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도 하기가 싫어서 그냥 남편에게 욕먹기를 선택한 날도 많았다. 전 남편에게 “쓸모없는 짐승”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그 시기였다.



게으른 것을 가지고 소위 ‘우울증 코스프레‘ 한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오랫동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완치된 지금의 내가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까지 삶이 망가지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우울증 때문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게으른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고 증세가 더 악화된다.



내 우울증은 어디서부터 시작 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질병이었다. 매일매일 싸우는 부모님 때문에 나는 항상 불안하고 주눅 들어 있었다. 지옥 같은 하루하루였지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현실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만화책을 읽으며 현실 도피를 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새로 이루어 낼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며 버텨 냈다. 하루빨리 부모님 품을 벗어나고 싶어서 결혼을 선택했지만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전혀 없었던 나는 동등한 인간대 인간으로 남편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닌, 남편의 부속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가난하고 무능력한 나를 노예로 사 온 것이나 다름 없는데,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얼마나가 화가 나겠는가. 노예에게 자유의지란, 인권이란 없는 것이다.



이혼하기 전부터 복용해 오던 우울증 약은 이혼하고 담당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끊게 되었다. 복용 기간은 정확히 1년이었다. 나는 끊기 싫었다. 우울증 약 없이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 전과 같이 무기력한 나 자신으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다.



우울증 약을 끊고 나는 거의 한 달 까까이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식은땀과 현기증 구토 증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견뎌 냈고 이제는 평범하게 남들처럼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설거지는 쌓아 놓지 않고 매일 식사를 차리고 청소를 한다. 지금도 살면서 한 번씩 안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병원을 찾아봐야 하나 생각이 들지만 금단 증상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다시 약을 복용할 마음을 접는다.



지금 상황이야 어찌 되었건 다는 우울증 완치 진단을 받았고 예전과 같은 인지력 저하, 무기력증 증상도 거의 사라졌다. 다음에는 우울증이 낫고 난 뒤의 구체적인 변화에 대해서 한번 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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