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 이 글에서 묘사하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견해는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이 없는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담입니다. 제 글을 통해서 나르시시스트에 대해서 정의 내리거나 스스로의 증상을 판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물학적 성별, 나이, 직업, 사는 곳, 취미 등등...
하지만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카테고리는 ‘나르시시스트 생존자’라는 범주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오랜 시간 착취 당하다가 그 관계를 끊게 된 사람들을 일컬어 소위 ‘나르시시스트 생존자’라고 한다. 나는 이 ‘생존자’라는 워딩이 결코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혼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나에게 했던 비난의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으며 그 남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고 이성을 잃기 직전의 분노가 일어나니 말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PTSD 반응의 일종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한심한 인간
쓸모없는 인간
게으른 짐승
전남편이 나에게 수시로 했던 말들이다.
아니야.
나는 한심하지 않아.
쓸모없이 않아.
게으른 짐승이 아니야.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돈도 벌고 번듯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남자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전남편의 말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사람이 했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나는 오히려 스스로 비대한 자아상에 갇히게 된다. ’ 뭐든지 해낼 수 있는 대단한 나‘라는 왜곡된 안경을 쓴 채로 세상과 스스로를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통찰 없이 무작정 사회에 뛰어든 어리숙한 나는 자영업자라는 선택지를 건드리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인해 얻게 된 건 2000만 원가량의 빚이다.
내가 자영업을 하면서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날려버린 시간과 돈은
아직까지도 씁쓸하다.
자영업을 시작한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내면적인 통찰 없이. 그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하나로 그전에는 관심도 없고 경험해 보지도 않은 분야에 뛰어든 게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갓 태어난 양이 사자에게 덤벼드는 그런 세상물정 모르는 선택을 한 것은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욕심’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혼자서 애를 키우며 단기간에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는 그런 슈퍼우먼이 아니다. 내가 슈퍼우먼이 아닌 것이 내가 비난받아야 될 이유도 아니다. 나는 그냥 보통의 사람이다. 간혹 어느 분야에는 조금 더 특별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떠한 순간에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단점이 있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누구나 다 조금씩이라도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 당해온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마치 죄악처럼 느끼게 되고, 결국 둘 중 하나의 길을 걷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의 투사와 가스라이팅에 세뇌되어 스스로를 평생 비난하며 나르의 꼭두각시로 살거나, 나처럼 나르시시시트가 했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허황된 자아상에 도취되어 파멸의 길을 걷거나.
이제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전남편에게,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월급은 적지만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고 있으며,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술과 커피를 끊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고, 매일 밥을 차리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전남편 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인생 일지언정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다 보면 서럽고 울분이 터지고 괴로운 순간이 분명 또 찾아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자, 매서운 바람이 불어 쓰러질지언정 꺾이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