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시트와의 이혼 - 2 -

배려는 약점이 되어서 돌아온다

by 조금






전남편이 아이를 주말에 데려갔다. 친척 결혼식이 있다는 이유였다. 나는 내심 내키지 않으면서도 주말에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합리화를 하며 아이를 아빠 집에 데려다 준다. 그리고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또다시 내가 전남편의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다. 요 근래 아이 아빠집에 픽업드롭을 하는 건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몫이 되었다.



볼일을 보고 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엔 곧 있으면 아이가 데리러 오라고 전화할 시간이었다. 나는 전남편 집 근처에서 주차를 해 놓고 아이를 기다렸다. 저녁 대신 김밥 한 줄을 사서 차 안에서 말 그대로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아뿔싸 차 안에 음료가 하나도 없다. 두툼한 참치 김밥을 먹다 보니 가슴이 턱턱 막혀 온다. 이젠 김밥도 소화시키기가 힘들어진 나이이다.



소화를 시킬 겸 나는 차에서 내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밤거리를 걸었다. 너무 얇은 외투를 걸친 탓에 살 겉으로 냉기가 파고든다. 고층의 브랜드 아파트들이 즐비한 이 신도시는 얼마 전까지 내가 살던 동네였지만 이제는 없어진 내 자리 때문인지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차로 다시 돌아와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한테 엄마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



아이는 쩔쩔매면서 그냥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되냐고 한다. 나는 아이가 지금처럼 전남편 사이에 끼어서 힘들어하는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항상 내가 먼저 배려한다. 그리고 전남편은 또 그런 내가 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귀신 같이 잡아 내고 점점 더 내가 희생하게 끔 만든다.



항상 이런 식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해줬던 얄팍한 배려들이 내 약점이 되어 돌아온다. 아빠를 바꾸라고 했더니 맥락 없는 욕설이 돌아온다. 상황에 맞지 않는 핑계를 대면서 믿도 끝도 없이 나를 비난하며 참아 왔던 분노를 나에게 분수를 터트리듯이 퍼붓는다.



전남편에게 나는 아직도 자신의 일부분인가 보다. 우린 이제 이혼한 사이이고 부부일 때처럼 그렇게 욕설을 하고 폭언을 퍼부으면 내가 법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까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나는 집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어차피 전남편이 술을 마셔서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 아빠가 싸워서 무서웠다고 한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엄마 아빠가 싸웠던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식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보같이 참고만 있다가는 전남편은 또 내 영역을 침범하고 나를 착취하려 들 것이다.



타인이 봤을 때는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해 보이는 그 남자는 악성 나르시시스트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희생자가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그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할 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가 협박과 모욕이 섞인 욕설을 해도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부모님은 오히려 전남편을 버티지 못한 나를 원망하고 있고 친정부모님은 본인들이 가진 문제 만으로도 골치 아프며, 내 감정에 공감 이상의 개입은 하지 않는다. 경찰관들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한정적이며 법은 너무 멀리 있다.



그날 밤 전 남편에 대한 두려움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계속해서 아이의 눈치를 보며 전남편에게 맞춰주면, 이 징그러운 인간은 나를 더욱더 우습게 보고 본인 깊은 곳에 있는 추악한 감정들을 가감 없이 내 앞에 꺼내 보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인간을 이해할 수없다. 이해할 수 없기에 대응할 방법도 알 수가 없다. 그의 주장은 전혀 논리가 없다. 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들어 찾아낸 나의 어떠한 특성 하나를 약점 잡아서 거세게 비난한다. 괴랄한 주장 앞에서 나는 또 말문이 막히고 무너진다.



내가 혼자 감당하고 판단하기에는 나는 너무 무지하다. 무조건 남편과 전 시댁 가족들을 단절시키기에는 내 아이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질까 봐 두렵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가난이 두렵고 나 자신이 너무 미약하게 느껴 저서 두렵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엔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 두려움은 나에 대한 삶의 의지를 꺾어 버린다.



문뜩 미등을 켜서 내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걷잡을 수 없이 날뛰고 있던 생각들이 잠시 멈춘다. 내일은 월요일이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아이를 매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해줄 수 있을까. 세상에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아아의 엄마라는 존재를 대신할 수 있을까.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내가 낳은 내 새끼가 매일매일 나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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