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를 절대 무너질 수 없게 만드는 기둥이다.
새벽에 아이의 뒤척거림에 잠에서 깨었다. 전날 자기 전에 이상하게 아이 몸이 평소보다 따끈따끈하게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체온을 측정해 38.4도이다. 어느덧 육아 경력 10년 차인 나는 당황하지 않고 부엌으로 나가 아세트아미노팬, 맥시부팬 두 종류로 사다 놓은 해열제를 꺼낸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워서 해열제를 체중에 맞춰 정량으로 먹였다. 아이는 약을 먹고 갑자기 각성하더니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재잘재잘 떠들어 댄다. 평소에 아플 때는 약을 먹이면 기운이 없어 곧장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는데, 어쩐지 평소보다 더욱더 쌩쌩해 보인다. 평소랑 다르다는 게 바로 아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겠지. 휴대폰 메모장에 내가 먹인 약과 시간을 기록하고 아이를 겨우 다독여 재우고 나도 다시 잠을 청했다.
몇 시간 후에 아이를 마스크를 씌워 학교에 보내고 잠깐 볼 일을 본 후에 다시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학원에는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갈 수 없다고 연락했다. 의사 선생님이 요즘 코로나가 유행이라 감기로 찾아온 10명 중 6명은 코로나라고 한다.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해도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빼는 거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아이는 코로나 검사라면 질색팔색이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감기약만 처방받아 집으로 향한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은 37도 후반 ~ 38도 중반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이의 컨디션은 괜찮아 보인다.
목이 아프다고 하기에 볶은 작두콩과 건여주를 같이 차로 끓여서 수시로 마시게 했다. 집에는 해야 할 일이 쌓여있고 열은 나지만 컨디션은 쌩쌩한 딸아이는 엄마에게 놀아 달라고 조른다. 새벽부터 많은 일에 치인 나는 조용히 패드를 꺼내며 로블록스를 하라고 했다. 아이는 기뻐서 펄쩍 뛰지만 나는 속이 뒤집어진다. 비록 게임이라도 아이는 씩씩하게 혼자서 잘 놀고 있고 나는 내 할일을 하면 되지만 급작스러운 무력감이 내 정신을 휘감는다. 그리고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에는 전남편을 떠올릴 때면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떠오르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항상 아빠의 자리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 같이 걱정할 사람이 없다는 게 내 가슴에 여전히 생체기를 내고 있다. 아이는 괜찮다. 내 욕심이다. 전남편은 내가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집안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고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나 대신 병원에 가준다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 상태를 체크하고 해열제를 먹인다거나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관련하여 어떠한 난관에 부닥쳤을 때 고난을 함께 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슬프다. 애초에 내 고난을 함께 해주는 그런 남편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오늘 아침에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결석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오후에 있었던 내 개인 스케줄에도 불참한다는 통보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계란죽을 끓여 먹이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옛날 같으면 약 먹이는 것도 한바탕 전쟁이었을 텐데 어느새 자란 우리 공주는 씩씩하게 약을 혼자서 먹는다.
“엄마, 그냥 하나하나씩 천천히 먹으면 돼 그치?”
아이는 나한테 자랑스럽게 말한다. 약을 다 먹는 것을 지켜본 뒤에 나는 패드를 꺼내 글을 쓴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내 잘못으로 벌어지지 않은 일에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사과를 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예전의 나는 견딜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내 딸아이는 무기력하고 나약하고 어설픈 나를 어찌 되었든 간에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든다.
육아로 인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이 되고 가뜩이나 순탄치 않은 인생에 난관이 더 추가되어있지만, 뭐 어떠랴 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내 아이를 지키는 것이 내 아이의 보호자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백수라서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나중에 일을 다시 시작하면 곁에 있어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겠지, 아이가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내 아이를 나 혼자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