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생리와 다른 또 다른 지랄병을 가지고 있다.
관련성이 아주 없진 않겠지만 남편은 주기적으로 '그분'이라 한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배달앱을 켜 궁시렁거리며 치킨을 주문한다.
치킨은 만병통치약이다.
소울푸드를 넘어 치킨 냄새를 맡으며 경건하게 한 입 베어무는 것 자체가 나의 심신이 안정되게 하는 활동이다.
운동은 남편이 나의 몫까지 충분히 해주고 있어서 나까지 운동하고 온 느낌을 듬뿍 받는다.
어린이집 원장님, 유치원 원장님, 발달센터 원장님들, 의사 선생님까지 하나같이 꾸준하게 이야기해왔던 것들이 있다.
'취미를 가지세요. 운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말을 몇 년 간 부지런히 들어왔는데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결같다.
'좀비'
얼굴은 허옇고 목과 허리는 죽어가는 화분 줄기마냥 축 늘어져 있으니. 푸석푸석한 피부에 꾹 눌러쓴 벙거지 모자까지,
창백함을 더 빛나게 해 줬는지도.
부모 검사할 때 MMPI를 했었는데 우울척도가 많이 올라와 있었는지
우울증 약을 드시고 있거나 드셔야 하는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난 우울하지 않은데, 그냥 몰두해 있을 뿐인데.
수많은 육아서적이나 육아 관련된 글귀들은 죄다 엄마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 준다. 나쁜 건 아닌데 나한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감성적인 글은 나의 몰두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내가 앞으로 해내야 하는 일에 정확히 조준해 놓고 엉뚱하게 옆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무엇을 잘 처리하는 성격이 못돼서 하나만 해야 한다. 그 하나도 옳게 하지 못하는데.
이건 기회가 없다. 육아에 정확한 답도 없단다. 아이마다 부모마다 다르니 그냥 내 스타일대로 키울 수밖에. 기꺼이 해내야 하니까.
실패하면 안 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내 최종 목표지점까지.
흔들림 없는 침대처럼. 그러니 내 취미는 아들 덕질이어야 한다.
다행히 외모가 나쁘지 않다. 아직은 하얀 피부에 맑고 생기 있게 웃는 모습이 아이돌 데뷔 직전의 탈락한 학생만큼 예쁘다.
그래서 요상한 행동을 해도 자고 있는 모습 보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얼굴이 남아나지 않을 만큼 실컷 뽀뽀한다. 깨어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덕질하는 것이 학생 때부터 익숙했던 짓이라 체력적으로 힘들 뿐,
행위자체의 방법을 모르진 않는다.
시간 날 때마다 발달 카페 들어가서 수시로 관련 없는 글까지 보고
넷상 특유의 친절을 베풀어 출석체크와 도움 되는 것들을 생각해 보며 댓글을 달고 교보문고 앱에 읽을만한 도서를 체크하다 우리 고구마가 했던 행동들이 불쑥 튀어나오면 웃으며 사진첩을 헤매다 다시 한숨이 나오며 각종 검사와 발달에 도움 되는 것들을 검색하며 늘어난 두통에 타이레놀 한 알 털어 넣으면 아이가 집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다시 초췌한 좀비 모습으로 아이를 맞이하며 나의 오후 일과가 시작된다.
열심히 찾아보았던 활동들을 신들린 듯 굿 하듯 그렇게 혼자 논다. 아이는 반응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는데 엄마 혼자 외로워서 억지 참여를 유도한다.
결말은 씁쓸하다. 내 활동은 결국 아이가 계속 원하는 활동과 콜라보를 이루며 잠시 상호작용을 하다 결국 아이 혼자 노는 결말로 끝이 난다.
커서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커서도 '에베베베 따따 뷰뜽뷰뜽' 거려도 상관없을 텐데.
거창하게 준비한 나의 활동과 굳게 마음먹은 나는 어디 있나,
날 쳐다보지 않는, 찾지도 않는 아들을 향해 소리 없이 사라져 준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요리를 하고 남편 퇴근 맞이를 한다.
엄마의 육성보다 펜이 들려주는 동화책이 더 좋아서 잘 때까지 귓구멍에 집어넣어서 듣는다. 전문가들이 엄마의 음성으로 들려주라던데. 내 노력이 통한 걸까, 50권 중 1권 정도는 재미 붙은 책이 있다. 그럼 그 1권은 1년 내내 읽어주면 된다.
외워버려서 눈 감고 자면서도 읽어준다. 같은 톤으로 같은 재미 포인트를 넣어서. 우리 아들은 심각하게 웃기면 딸꾹질을 하는데 결국 그 딸꾹질 때문에 밤잠이 자꾸만 늦어진다.
그렇게 내 쉰 목소리와 아들 잠으로 교환이 끝나면 인어공주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와 휴대폰을 본다. 남편의 코골이와 아들의 나비잠을 뒤로한 채 쓸데없이 새벽 감성에 젖어 눈물 콧물 흘리며 발달 관련된 정보들을 찾다 이른 아침을 알리기 전에 얼른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