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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olife May 29. 2019

결혼 전 '동거'가 아니라

'자취'를 하자. 

결혼을 하기 전에 '동거'를 해보면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은지 아닌지 판단이 설까? 

사귀는 사람과 결혼을 할지 말지 판단하기 전에 동거를 해보고, 그 다음 결혼을 결정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미국으로 오면서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파란만장한 외국 생활에 남자 친구까지 생기면 내가 내 자신의 중심을 다 잡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람을 미국에서 만나 이미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보니 내 마음은 이내 열렸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던 우리는 가벼운 관계가 아닌 진지한 관계로 만나야 하는 것도 이미 합의를 봤다. 당장 결혼을 하자는 건 아니었지만 사귐과 동시에 큰 일이 없는 이상 결혼까지 생각했다. 


미국에 있었기에 이미 집을 떠났고, 또 룸메이트 생활을 했었기에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만나면서도 편히 만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카페든 공원이든 밖을 떠돌아다녀야했기에 동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혼 전에 미리 이 사람에 대해서 더 빨리 알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동안 계속 따로 룸메이트 생활을 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을 즈음 함께 지낼 집을 구했다. 그 직후 우리는 이직도 하고, 또 결혼 준비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됬다. 결혼 생활을 시작할 집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퇴근 후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해 먹는 자체가 서로에게 힐링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거의 경험이 결혼을 판단한 기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식 날짜를 정한 사이였기 때문에 결혼을 판단할 기준이 되기 보다는 서로의 생활 습관을 함께 맞추어 나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었다. 


동거를 통해서 이 남자와 결혼을 할지 말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내 대답은 'Nope!'.

결혼한지 3년이 되어가니 동거로 결혼을 할지 말지 판단을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맞춰가는 과정을 미리 경험하고, 사소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시험은 해볼 수 있겠지만. 동거를 통해서 상대방이 어떤 생활 습관을 가졌고, 나는 그 생활 습관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니까 결혼을 안하겠다. 라는 판단은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습관을 고치든, 내가 포기하고 받아주든. 그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구지 동거를 하지 않아도, 연애를 하면서 생기는 갈등으로도 충분히 마주할 수 있다. 동거라는 것은 내가 사회 생활을 하고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와도 집에 사람이 있으니 어쩌면 사회 생활의 연속이다. 게다가 혹시나 헤어지더라도 동거의 꼬리표도 작은 일은 아니며, 함께 구한 집을 파기하는 것도 어렵다. 내가 살던 집으로 상대방이 들어와서 사는 거라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설사 헤어져서 상대방이 집을 나가게 되면 이별의 아픔이 배가 될 수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갈등은 연애를 하면서도 열심히 풀어가고, 맞춰가 볼 수 있으므로 이런 이유로 동거를 해보겠다고 하면 이득보다는 손해보는 게 더 많은 것 같기때문에 하지 말라고 말릴 것 같다. 게다가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갈등과 동거를 하면서 생기는 갈등은 천지 차이다. 결혼을 하고나면 둘 사이의 갈등 보다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면서 생기는 갈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결혼할만한 배우자인지 판단을 하기 위해 '동거'보다 좋은 방법인 '자취'다. 


만약 상대방이 자취를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집에 가면 그 사람의 생활 방식이 보인다. 청소를 하는지도 보이고 요리를 해먹는지도 보인다. 게다가 그 사람의 취향도 보인다. 자취를 한지 별로 되지 않았다면 청소도, 요리도, 엉망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본인 손으로 쓰레기 봉투 한번 내놔보고 빨래 한번 해본 경험은 자취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과 천지차이이다. 집안일에 대한 수고를 경험해봄으로써 서로 일을 나누는 것에 대해 당연시 생각할 수 있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더 해주면 고마운 감정도 가질 수 있다. 배우자가 자취 한번 안 해보고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바로 결혼을 한다면... 집안 분위기마다 다르겠지만 대게 세탁기 한번 돌려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빨래를 빨아보지도 게어보지도, 청소 한번 안 해봤을 가능성. 정말 농후하다. 


자취하는 남자를 만나는 걸 추천한다. 


나혼자산다를 보면 자취하는 사람의 집이 나온다. 기안84, 이시언의 집과 헨리의 집은 너무나 다르다. 헨리의 집은 자신의 취향대로 인테리어도 했을 뿐 아니라 정리도 어느정도는 되어 있다. 청소와 빨래를 몇번이나 하는지 등은 잘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옷은 어디에 있고, 적어도 빨래통에 빨래할 옷은 들어가 있다. 하지만 기안84와 이시언의 집은 다르다. 자취 초반에 집이 어질러있거나 청소가 잘 되어있지 않거나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변하는 사람도 있다. 자취를 하며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다가 불편함에 못이겨 쓰레받기를 든다. 쓰레받기로 청소를 하다가 이내 청소기를 산다. 햇반을 먹다가 밥통을 사서 밥을 짓는다. 집안일을 할 수록 장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런 과정을 겪어 본 사람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천지차이다. 


집안일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여전히 집안일 분담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는 우리나라, 그리고 지금 우리 세대. 나는 자취해본 남자를 만나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집안일이 많이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 좋지만, 엉망진창인 남자의 자취방을 보고 앞으로의 내 결혼 생활이 어떨지 대충 그릴 수도 있다. 자취를 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요리 레시피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는 걸 꼭 염두해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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