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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olife May 24. 2019

인간관계가 없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지금은. 

5년 전부터 전원주택을 사려고 둘러보던 우리 엄마, 아빠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전원주택을 사셨고 한창 들뜬 마음으로 이사를 준비중이시다. 미국에 사는 나에게 전화를 하는 횟수도 늘었고, 구석 구석 집 사진을 보내주면서 이사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리모델링할지, 어디에 꽃을 심을지 이야기하며 행복해하신다. 


원래는 집을 지으려고 하셨었다. 마음에 드는 입지에, 엄마의 머릿 속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넣은 집을 짓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여러번 이사를 다니면서 아파트, 빌라, 주택 모두 살아본 경험으로 집을 지으면 당연히 이웃과 조금이라도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땅 계약 부터 인테리어 업자 등등 많은 사람들과의 계약을 하는 입장에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도 전에 머리가 아프시단다. 무엇보다 그걸 모두 엄마가 해야한다는 '사실'이 시작도 전에 포기부터 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사업가 스타일, 아빠는 학자 스타일. 사실 대부분의 집안일 중 추진력이 필요한 부분은 엄마가 했기에 엄마가 우려하는 부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많은 사람들이 얽히면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다행히 지금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버이날에 친가, 외가에 가신 엄마는 곧 이사를 갈 것이라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얼마나 신나게 자랑을 하셨을까.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 좋아하셨고 꼭 방문하겠다 하셨단다. 집들이를 어떻게 할지도 아마 엄마는 다 그려놓으셨을거다. 그러면서 엄마는 빼야 할 사람도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 것같다. 우리가 집을 살 때마다 배아파하던 친인척이 있다. 그 분들은 초대해봤자 긁어 부스럼이다. 불러도, 안 불러도 안 좋은 소리 들을 바에야 안 부르는 게 낫다. 아빠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아빠보다 엄마와 친할 정도로 엄마는 마당발이신데, 어마가 가차없이 인간관계를 끊을 때가 있다. 


엄마의 추진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나는 일을 참 많이도 벌렸다. 대학생 때도 교내 동아리 뿐아니라 교외 동아리, 사회생활 모임 그리고 사업을 진행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내 플래너는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빽빽했다. 잠시 내가 플래너를 내려놓은 시간은 미국에 어학연수를 온 1년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또 대학원을 가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또 사업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빡빡하게, 조금의 시간을 버리지 않고 살았던 것 같지만, 중간 중간 기약없는 하루 하루를 보냈던 시간도 있었다. 입사가 확정되고, 대학원 합격 소식을 받은 날. 그런 날들은 손에 꼽을 뿐 당연히 미래는 불투명하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나날들은 불안함으로 가득찰 뿐이다. 하지만 기쁜 결과를 받는 날, 나는 처음으로 절망도 맛봤었다. 당연히 함께 기뻐할 줄 알았던 친구들 중엔 그다지 기분 좋은 말투가 아닌, 오히려 살짝은 비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던 언니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함께 기뻐해줄 것 같았던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느껴본 시기와 질투. 이런 일을 겪으니 부모님의 소중함도 더 깊게 느껴졌다. 결혼을 해보니 더 그렇다. 결혼하면서 집을 마련하고, 두 사람의 연봉이 합쳐져 명백하게 숫자로 경제력이 나오니, 비교가 더 쉽다. 비교를 하면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또한 남을 시기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내가 현재 잘하고 있는걸까'하면서 남의 사정을 궁금해할 수는 있지만, 그럴수록 본인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나보다 못난 사람도 있겠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가끔 나도 못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가 보면 미국에 살면서 명절에 구지 힘든 일 안 해도 되고, 한국 집값에 고통받을 염려도 없고, 특히나 회식, 야근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겠다 하겠지만. 친지 가족 하나 없이, 내 신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내 언어가 아니니 내 능력의 반도 펼칠 수 없고, 인터넷 연결하는 것 조차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이 다르니 정말 하나 하나 유치원 아이가 사회 생활에 나온 것처럼 배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전화를 할 때는 미국에서 내가 겪는 일들을 이야기해봤자 공감하지 못하니 이야기하지 않아 얼마나 나의 어려움을 그들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부러움도 받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 집사고, 애 낳으면 부모님이 봐주셔서 일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한국에서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러나 누가 알겠나. 그 속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영주권도 내 손에 쥐고 있고, 집을 살 생각을 할 정도로 조금씩 돈도 모았지만. 이 3년의 과정은 '고생 많이 했네~늙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 고비 한 고비 내 얼굴에 주름으로 새겨졌다. 미국에 남은 친구들보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더 많다. 그들에게는 내 사정이 더 좋아보일지 몰라도, 한국에서 또 새로운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능력을 쌓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나 또한 그 친구들이 부러워질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 과정들은 공유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6개월 뒤를 어떻게 채워갈지가 더 중요한 지금이다. 인간관계가 없으면 혼자 고립되고 소외된다는 생각에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이렇게 아무런 관계없이 온전히 내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쉬고, 그 속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이 참으로 필요하다. 남과의 비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은 그런 비교를 놓기 힘들다면 차라리 그 비교 대상을 잠시 없애도 좋다. 비교할 대상, 즉 인간 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처음엔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순간을 잘 넘기면 온전히 나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주목하게된다. 남의 기준과 남의 상활에 잣대가 맞추어지는 게 아니라 나의 상황에 맞춰, 나의 삶을 설계하는 데에는 사실 인간관계가 주는 이로움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나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에는 인간관계가 오히려 해로울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잠시 놓는다해도 나의 진정한 관계속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나를 받아주니 잠시 내려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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