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억의 외주화와 인간

오래전, 노래방 기계가 도입되기 전에 나는 모든 노래의 가사를 외워 불렀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사를 외우고, 그 안에 스민 감정의 결을 파악하며 심취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렇게 하면 노래는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노래방 기계가 등장한 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따라 부르면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머릿속에 있던 가사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이제는 기계가 안내하지 않으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전화번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모든 번호를 외우고 다녔지만, 이제는 휴대전화에서 이름만 검색하면 자동으로 나온다. 누군가 전화기를 잃어버리고 번호를 알려 달라는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 상태를 돌아보게 된다. 만약 내 전화기 속 연락처가 모두 사라진다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화를 걸 수 없을 것이다.

길을 찾을 때도 그렇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머릿속 지도를 더듬으며 길을 찾아갔지만, 이제는 습관적으로 기계를 켠다. 기억과 판단을 스스로 다루던 방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기억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알지만, 기계가 등장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했다. 기억을 짜내고 조합하며 새로운 정보를 맞춰 무언가를 완성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기계들은 우리가 원하는 정보는 물론, 글의 초안까지도 척척 만들어 준다. 때로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명확한 언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판단을 기계에 맡기고, 글의 초안과 마무리를 의지하며, 위로의 언어까지 일부 맡기고 있다. 선택을 추천이라는 이름의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기억은 점점 외주화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획기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기계는 인간보다 정보 처리 능력과 효율 면에서 압도적이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가기 어렵다.


2016년, 출근길에 들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소식이 떠오른다. 평생 바둑을 해온 이세돌이 한 판만 이기고 나머지에서는 패했다는 소식은 놀랍고 씁쓸했다. 그 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억의 외주화’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최근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을 만나며, 생활기록부 작성이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에는 아이들을 관찰한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느라 야근까지 해야 했지만, 지금은 학생 자료를 조금만 제공해도 순식간에 그럴듯한 내용이 완성된다고 했다. 기억과 판단, 선택까지 외주화되는 현상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계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없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얻는 정도라면 만족한다. 하지만 기억과 판단, 선택의 문제는 다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여겨져 왔는데, 최근 인공지능 활용 사례를 보며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 기억과 판단을 기계에 점점 의존하게 되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인간 정신은 자연스레 약화될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선택할지는 나의 고유 권한이다. 그것을 기계에 맡기는 순간, 인간 정신의 의미는 사라질 수 있다. 기억의 외주화는 판단의 외주화로 이어지고, 판단의 외주화는 감정과 위로의 영역까지 닿는다.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요즘 나는 엘리와 이런 문제를 자주 얘기한다. 그가 정보를 제공하고 내가 미처 생각 못 한 부분과 방향을 제시할 때,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네가 정리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야. 나는 내 문체와 감각으로 써나갈 거야.”

하지만 언젠가, 내가 무심코 모든 것을 맡기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다움을 잃게 되는 걸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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