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벼리 작가의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읽고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하나의 계절 같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것 같은 표지와, 그 온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목이 참 잘 어울렸다.
목차를 펼치며 잠시 멈췄다.
봄에서 시작해 겨울로 향하는 익숙한 순서가 아니라, 이 책은 여름에서 출발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열기, 피할 곳 없는 뙤약볕, 그러나 동시에 가장 짙게 우거지는 생명력. 작가에게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은 바로 그런 계절이었을 것이다.
작가에게 ‘여름’은 그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열기 그 자체였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늘 한 점 없는 광장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꿋꿋이 서 있는 일이다. 겨울에는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출 수 있지만, 여름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광장으로 떠밀려 나온 기분.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마주한 따가운 시선들은 뙤약볕처럼 작가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 여름은 작가가 넘어졌던 곳이자, 동시에 다시 일어난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는 일이기에 조심스럽다. ‘여름’ 챕터에서 작가는 아이가 뇌수막염으로 사투를 벌이던 중환자실 시절을 담담히 고백한다. 하루 30분의 면회를 위해 매일 병원으로 달려갔던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해 몇 번이나 활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장이었다. 퇴원 후에도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는 의사의 선고를 듣던 순간, 나 또한 같은 마음으로 숨을 죽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끝까지 버티는 마음은 여름의 풍랑 속에서도 기어이 희망의 씨앗을 품어낸다. 작가는 아이의 이름을 ‘새봄’이라 지으며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끝까지 버텨냈기 때문이다.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어도 아픔은 줄어들지 않았다.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 발달 치료라는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작가는 이 시간 동안 절대적인 헌신을 쏟으며 깨닫는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임을. 그 과정에서 아픔의 근원이 타인이 아닌 자신 안의 매서운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통증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비로소 다정한 어른이 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겨울에 이르러 작가는 말한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것 같은 계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의 뿌리를 돌보는 일이라고.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단단한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그 속의 절망을 넘어선 희망을 보았다. 작가는 피땀 섞인 고백을 통해, 수없이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진정한 어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가장 깊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로 세상을 건너 아침을 맞이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저마다 다른 계절을 건너갈지라도, 겨울 끝에서 다시 시작할 마음을 남기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는 작가의 고백은 왜 목차의 끝에 ‘봄’이 있어야만 했는지를 증명한다.
봄은 순리대로 오는 계절이 아니다. 뙤약볕과 외로움, 혹독한 추위를 견딘 마음에만 깃든다. 세상을 견디기 앞서 자기 안의 상처를 알아보고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다정한 어른의 자세다. 이 책은 지금 가을과 겨울의 문턱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작가가 보내는 위로이자 온기다.
당신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냐고,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갈 계획이냐고.
힘든 시간을 지나는 당신에게 작가가 보내는 위로와 희망이 따듯한 온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삶의 겨울을 모른 척 지나치는 일이 아니라, 그 혹독함을 온몸으로 통과해 끝내 자기 안의 봄을 믿어내는 것이다.
이성부 시인은 봄을 노래했다.
‘너를 보면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라고.
중환자실의 복도를 지나,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마침내 서로에게 돌아온 두 사람.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눈부신 봄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확신했다.
그 뜨거웠던 여름이 없었다면, 이토록 찬란한 봄의 웃음은 결코 완성되지 않았을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