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차를 몰고 나가니 폭포처럼 떨어지는 빗줄기에 와이퍼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비 오는 날일수록 차가 더 필요하지 않나 싶어 결국 시동을 걸었다. 늘 그렇듯.
문제는 일상이 된 운전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일을 마치고 주차장에 들어가 익숙하게 코너를 도는 순간, 양옆에 세워진 차의 위치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평소처럼 진입했고, 그때 부르르륵— 다소 길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사고다.
차를 세우고 내려 확인하는 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 조수석 뒷자리와 휀더 쪽에 상대 차의 페인트가 묻어 있었고, 움푹 들어간 자국도 보였다. 빗물에 젖은 차를 바라보며,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뭣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피해 차량의 차주가 주차장에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인사를 나누던 분이다. 이제 다가가 차를 긁었다고 말할 차례였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짓던 그분은 시동을 걸더니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창문을 두드리면 되었고, 손짓만 해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내 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차의 흠집을, 빗물을, 손에 쥔 휴지를.
말을 걸면 일이 커질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과,
지금만 넘기면 없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차는 결국 출구 쪽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고가 났다고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고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집으로 올라와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남의 차 긁었어.”
“얼마나?”
“꽤.”
“처리했어?”
“아니… 말도 못 했어.”
왜 그랬을까.
딸의 질문 앞에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무서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이 일이 없던 일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딸은 바로 조처하라고 했다. 블랙박스를 보라고, 뺑소니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차로 내려가 블랙박스를 들여다봤지만, 화면은 작고 흐렸다. 결국, 관리실로 향했다. 관리실과 CCTV 앞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내 차가 들어오는 장면은 분명한데, 상대 차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각도를 바꾸고, 시간을 되돌리고, 다시 멈췄다. 화면을 들여다볼수록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 이건 단순히 차를 찾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가려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같았다.
정문 CCTV에서 마침내 차량 번호를 확인했을 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는 안도감이었다.
관리실을 통해 연락이 닿았고, 상대방과 통화가 되었다. 아까 경황이 없어 말을 못 했다고 사과했다. 상대방은 파손 부위를 확인한 뒤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하자, 상대방이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괜찮다고.
모든 것이 정리되자, 마음이 놀랄 만큼 가벼워졌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왜 그 짧은 순간에 말하지 못했을까.
저녁에 퇴근한 딸이 말했다.
“엄마 차였으면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든 찾지 않았겠어요?
찾고 보니 아는 이웃이면 더 배신감 들었을 거고요.
그리고 솔직해야 상대도 이해해요.
정직하지 않은 부모를 보면서 자식이 뭘 배우겠어요?”
마지막 말에, 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만약 아무도 보지 않았고 CCTV도 없었다면, 나는 과연 여기까지 왔을까.
아아, 고작 나의 양심이란 남의 눈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니.
그것도 인간이 아닌, CCTV 앞에서 말이다.
정직해서 마음이 편해진 게 아니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마침내 정직해졌을 뿐이다.
다행히도 그날의 주차장에는
나보다 먼저 깨어 있던 기계의 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