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프리미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주변에서 아쉽지 않냐고 물어오곤 한다.


그런데 나는 전혀, 조금도 아쉽지 않다. 그간 학교에 다닐 만큼 다녔고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나가는 것이 언제부턴가 버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방학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아이들과 업무에 치여 맞이한 한 달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고, 거기다가 방학에 보충을 하기라도 하면(2010년 이전에는 방학 보충수업이 매일 아침 9시부터 2시까지, 2주 연속으로 진행되곤 했다.) 10여 일을 잡아먹어 고작 쉬는 날은 보름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거기다 나이가 들면서 해마다 달라지는 몸의 상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도 힘에 부치기 일쑤였다.


인간과 인간이 온종일 직접 대면하는 직업은 절대로 일 년 내내 지속할 수는 없고 반드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데 교사에게는 그것이 방학이다.

방학은 직업에서 놓여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면서 정년 이후의 삶을 예상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그 시간을 정년 후의 일상으로 대치해 보면서 나의 정년 후 삶을 생각해 보았다.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을 것이고, 그동안 못한 운동도 꾸준히 다닐 것이며 교회의 중보 기도팀에 들어가 봉사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가까운 곳에 가서 아무 때나 1박을 할 수도 있으리라. 수업 시간에 매여 방학이 아니면 해보지 못했던 여행도 봄이나 가을 날씨가 좋은 계절에 즉흥적으로 떠날 수도 있으리라. 수업 시간에 쫓겨 급하게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볕이 좋은 날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나뭇잎을 적시는 태양의 각도를 오랫동안 관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진정한 자유를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퇴직한 모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현역이 그래도 좋았다고, 지금 있는 자리가 최고라고 한다. 쉬는 날의 달콤함을 맛보기도 전에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상환하라는 연락이 왔고 현직에 있을 때는 비교적 쉬웠던 대출이 공무원 프리미엄이 빠지니 한순간 한 데로 나앉은 기분이 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퇴직 전에 미리미리 직장을 나와 맞이할 우산 없는 삶을 준비하라는 말도 덧붙이신다. 하지만 평생 월급으로 사는 것 외에 다른 재테크를 해보지 않아 여유자금이 있을 리 만무인 나로서는 정년 후 맞이할 보릿고개를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으로 대체할 각오만 되어있을 뿐이다.

늘 그렇듯이 한없이 자라는 욕망을 다스려 구조 조정하고 걷는 즐거움을 누리며 타인과 비교함으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사실 건강만 큰 문제가 없다면 매스컴에서 떠드는 만큼 노후 생활비가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실손보험과 암보험이 하나씩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고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산다면 언론이 퍼뜨리는 노후 불안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현직 프리미엄은 늘 새로운 젊음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재직기간 동안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수십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내 삶은 매년 젊은 피를 새롭게 수혈받을 수 있었다.

오롯한 젊음의 생각과 언어와 새로운 사조들을, 그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공급받으며 나는 지금까지 젊음의 바다를 유영할 수 있었다.

그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고 손을 잡고 위로도 하고 응원의 글을 남길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겉모습은 늙어 갔지만 생각은 다를 수 있었다.



세상에 내 나이에 어디 가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과 부대끼며 교감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시간이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이 사무치도록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몸이 피곤해도 학생들이 주는 에너지로 피곤이 상쇄되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점,


그것이 퇴직을 앞둔 내게 유일한 아쉬움이며, 현직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