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 교사1

학교에는 학생도 있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선생님이 무기력하고 힘이 나지 않으면 학교가 활기차게 돌아갈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J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임용시험을 쳐서 교사가 되었다. 그녀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처음에 교사가 되어 학생을 가르칠 때 내성적인 성격이 크게 문제가 될 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학생과 직접 교류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엔 가슴이 뛰고 아는 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고 했다. 분명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버벅거리게 되고 수업 준비를 했는데도 수업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자 그녀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수업 준비를 좀 더 오래 하고 완벽하게 했음에도 증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기들이 보기에 교사의 수업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되면 급격히 자세가 흐트러지고 수업 분위기가 망가진다. 물론 그 시간을 완벽히 장악하지 못한 교사에게 일차적 문제가 있지만 냉담해진 아이들의 눈을 대하면 가슴이 떨려서 더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건 좀 심각한 상황이라고 느껴졌다.

긴장을 푸는 약도 먹어보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명상도 해보고 애를 썼지만, 그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신규교사라 선배 교사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모임도 해보고 교수법이나 이런저런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학교의 평판이나 교사의 호감도도 수업의 질에 있다고 봐도 된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최고고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낸 학교를 학부모는 선호한다.

1학기가 반이나 지난 5월. J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이제 대놓고 그녀의 수업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요.

우리를 보지 않고 허공만 보고 수업해요.

허공을 보다가 혼자 웃어요.

수업 시간에 뭘 배웠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의 불평에 이어 학부모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른 학급에 들어가는 선생님과 비교하며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수학을 어려워하는데 수학 시간에 못 알아듣겠답니다.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 과목인데 이 상태로 두실 건가요?

교과 담당 교사를 교체해 주실 수는 없나요?

선생님이 혼자서 말하고 수업을 끝내는데 애들이 무얼 배우겠어요?

진짜 심각합니다. 빠른 조치가 필요해요.

당사자인 J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도 그녀와 같은 경험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중학교에 오래 근무하다가 고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가자마자 고3 담임을 하라는 걸 간신히 거절하고 대신 고3 수업을 하기로 했다. 경력이 있는데 그까짓 것 못 가르칠까, 내심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때만 해도 EBS 교재 위주의 수업이 아니어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문제집을 자기 키만큼 쌓아놓고 풀었다. 처음 학교에서 고3을 맡게 해서 교재를 가지고 집에 왔는데 그 당시에 나는 수능 체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같은 중등이라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가 크고 서로 교류가 없어서 중학교에서 8년을 근무하다 갑자기 고3을 하자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 문학 작품만 해도 내가 모르는 내용이 70%나 되었다. 첫 수업 시간에 나는 아이들의 매서운 시선을 느꼈다. 수능 시험에 듣기 몇 문항, 문법, 문학, 비문학이 각각 어느 정도 비율로 출제되고 또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기선제압을 하고 들어가야 했는데 실패했다. 아이들이 물어도 바로바로 대처하기가 어려웠고 한참을 가지고 나온 문제를 보고 풀어야 했다. 첫날 세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는 지금 상태로는 고등학교에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EBS 채널에 들어가 다른 교사의 수업을 보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이 잡듯이 보고 또 보았다. 고등학교는 교과수업 외에 보충수업이 있었다. 방학 보충은 보통 90분 수업인데 한 시간에 나가야 할 진도도 상당했다. 사실 중학교에 있으면 문제 풀이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당시 중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 방식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수업 내용보다 수업의 스킬이 더 중요하던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업하며 내용이 중요한 거지 모둠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과제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식의 수업 실험이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던 적도 많았다.


어쨌거나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달라 수업 내용이 핵심이고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문제 풀이가 수업의 주요 내용이 되고 나는 EBS 강의를 들으며 지문 자체에 대한 이해보다 빠른 시간안에 문제 유형을 보고 지문을 역으로 읽어가는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이러다간 아이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수업은 아직 완벽한 문제 풀이에도 도달하지 못하였기에 보충수업을 마치고 정말 교사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이들은 언제 어떤 문제를 가져와도 척척 풀어주는 교사를 선호했고 조금 고민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교사를 꺼렸다. 고등학교 간 첫해, 나처럼 중학교에 오래 있다가 온 선생님의 고군분투 담을 들으며 그해에 울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냉정한 시선과 수업을 듣는 태도의 변화가 내게는 두려움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J와 교과가 다르므로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표정과 마른 몸을 바라보며 마음이 안 좋았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은 더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거부하는 학급이 생기자 옆 반도 영향을 받았다. 방학 동안 J가 신경정신과에 다녔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녀가 조금 이상하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녀는 학교에 친한 동료도 별로 없었고 늘 혼자였다. 친한 동료가 있어서 이야기라도 나누고 했다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원 폭주 속에 일 년이 지났다. 다음 해에 J는 1학년 교과를 맡았는데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한 달이 못가 학교가 뒤집혔다. 아이들은 단체로 수업 거부를 했고 학부모들이 교장실을 자주 찾았다. 여전히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허공을 보는 것도 여전했고 혼자서 웅얼거리는 말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녀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것도 약점이 되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며 강력하게 교사 교체를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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