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옮기고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문·이과로 나눠진 교육과정이라 아무래도 이과반 쪽 아이들이 우수하다. 전에 있던 학교는 예체능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 시간에도 슈퍼맨 포즈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더 있다가는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것 같아서 나는 내신서를 썼다.
첫날 지각생 하나 없는 교실은 고요하다. 하나같이 새로 온 담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교사 짬밥이 어언 20년 차에 들어가는 나는 그동안 겪은 아이들 이야기를 하라면 날밤을 새울 수도 있는데 이 반은 초장부터 분위기가 괜찮았다. 일단 아이들의 구성원이 남자 스물에 여자 일곱 명으로 단출하다. 성적을 정렬해 보니 1등급이 3, 2등급이 4, 3등급이 12명이다. 27명 중에서 19명이 1,2,3 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작년에 반장을 했던 아이도 세 명이나 있었다.
어쩐지 옆 반 담임이 구시렁거리며 나를 향해 하던 말이 떠오른다.
“김 선생님, 여기 학년 부장하고 혹시 이전부터 아는 사이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새로 전입해 온 교사에게 제일 알짜 반을 줄 수 있나? 캬, 농담인 건 아시죠? 부러워서 그래요. 부러워서. 그 반 작년에 난다 긴다 하는 애들 다 모인 반이라고요. 좋으시겠어요.”
하긴 그 말이 아니더라도 어제 조회와 첫 수업은 아주 훌륭했다. 모두 책상 위에 교과서와 노트를 빠짐없이 올려놓고 필기도구는 왼쪽에 둔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눈은 교사를 향해 반짝이고 상반신은 언제라도 교사의 부름에 응답할 자세로 긴장감이 보이고 힐끗 바라본 통통한 필통에는 필기구가 가지런히 정리된 채 들어 있었다.
3월 말이다.
교실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 한편에 초록 손바닥을 펼친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소나무 사이로 얼마 전에 심은 팬지꽃이 노랑과 보라색으로 대지를 물들이고 있다. 모든 게 순조롭고 평화롭다. 아이들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담임이 필요 없는 부류였다. 일단 출결에서 아무 문제가 없고 수업 자세나 반 분위기가 다른 반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공부도 잘하는 애들이 인성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땐, 빈익빈이고 부익부냐고 항변하기도 했었는데 진짜였다.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부모나 주변의 칭찬을 많이 받고 관리가 돼서인지 친구 사이에도 배려와 나눔이 넘쳐났다. ‘미안해’와 ‘고마워’가 아이들 입에서 수시로 튀어나왔다. 게다가 반장인 민준수는 이름값을 하는 아이로 모든 면에서 준수했다. 성적이 우리 반에서 최상위 그룹에 속했는데 겸손하기까지 해서 여학생의 인기와 교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나 할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청소 뒷마무리를 하고 귀찮게 불러대는 교사에게도 늘 살갑게 굴었다.
코로나로 3년간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 수학여행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기간이다. 코로나 기간에 원격 수업을 하기도 했고 격주로 등교하기도 했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친구들의 얼굴을 아는 것도 마스크 위의 두 눈과 상부의 이미지였기에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상상과 다른 경우 어리둥절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스크도 벗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니, 아이들의 기분은 높이가 없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2박 3일 중 하이라이트인 학급 장기자랑도 아이들의 관심사였다. 알다시피 우리 반 애들은 장기하고는 담쌓고 사는 모범생들인데 노래나 춤이 위주인 장기자랑에서 명함도 못 내밀 터였다. 전에 학교에서 상반신을 거의 벗다시피 하며 흐느적거리는 떼춤에 아이들이 열광하고 최우수상을 받는 것을 보고, 학교에도 선정적인 요소가 깊숙이 침투했다고 믿기에 나는 학급 장기자랑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사이엔가 학생다움은 사라지고 성인의 복사판 행동들이 학교에 버젓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섹시와 매혹이란 이름으로 말이지. 이런 나의 모습에 꼰대라고 해도 개의치 않을 테다. 장기자랑 얘기는 강조하지 않았는데 뭔가 준비한다고 애들이 남는 눈치다.
“내일 아침 비행기다. 늦게 오면 두고 떠난다. 그러니 늦지 않도록 해라. 물론, 우리 반엔 그런 애가 없겠지만.”
반장이 손을 든다. 무슨 일인가 눈으로 묻자
“저 선생님. 수학여행 하면 낭만을 빼면 시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를 거쳐온 우리가 생전 처음 가는 수학여행인데 어디까지 허용하실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결심하고 결행한 반장의 용기는 아이들의 박수로 불타올랐다.
“저희가 모여서 놀거나 음료수를 마셔도 될까요?”
“너희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한마디만 하고 싶다. 난 너희를 믿어. 아주 많이 믿고 있어.”
어어, 이러시면 안 되는데. 너무 믿으시면 다치십니다.
아이들이 웃는다. 웃음 속에서 얼핏 꽃향기가 풍겨온다.
4월 제주도엔 온통 노랑 유채가 가득했다. 날이 따뜻할 거라 믿었는데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었다. 그제야 제주도에 바람과 여자, 돌이 많다고 배웠던 것이 기억났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머리가 온통 반대편으로 나부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함께 따라간 사진사가 툴툴거렸다. 나중에 그나마 잘 나왔다고 가져온 사진들을 보니 휘날린 머리카락을 편집해서 아이들 표정이 어색한 게 많았다. 그러나 너나없이 한껏 벌린 입들은 당시의 즐거움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결같았다.
마지막 밤. 호텔 세미나실에서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헐벗은 아이들이 대세를 이룬다. 노래방처럼 돌아가는 유리볼이 현란하게 빛을 뿜고 온몸을 떨고 흔들고 비트는 춤이 현실 고등학생의 모습이라니 씁쓸했다. 저 열기를 그동안 풀지 못해서 어쨌누 하는 마음도 들긴 했다. 그동안 모여서 무얼 하나 했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단체로 나와 <아기 상어>를 율동과 함께 부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손뼉을 치는 아이들이 보이더니 전체가 리듬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귀여운 것들. 저 율동과 노래를 익히느라 그동안 애썼구나. 마음이 푸근해졌다.
아이들 점호를 방별로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씻고 좀 누워있으려니 학년 부장과 생활 지도계 선생이 문을 두드린다.
“그 반 애들이 전부 한 방으로 모이고 있어요. 손에 페트병을 들고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요즘 애들이 영악해서 소주 같은 걸 사이다로 위장해서 갖고 다녀요.”
“햐, 고것들이 우수한 애들이라고 오냐 오냐 해 주니 여기 와서 결국 뒤통수를 치네. 조금 있다가 판 벌어질 때쯤 들어가 보죠.”
학년 부장의 목소리에 무거운 돌 뭉치가 매달린 것 같다. 내가 애들을 너무 믿었던 것일까. 해맑은 준수의 눈빛에 안심했던 나에게 이런 식으로? 묘한 배신감과 오기가 일었다.
내 이 자식들을.
반 아이들은 둘을 제외하곤 모두 모여 있었다. 두 명은 아까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 먼저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막 컵에다 술을 따르고 건배를 하려던 참이었다. 들이닥친 우리 셋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동작 그만. 움직이지 마라. 그 컵, 그대로 들고 있어.”
생활 지도계가 빠르게 한 아이의 컵을 낚아채 마신다. 그의 얼굴이 굳는다.
제대로 걸렸구나. 최소 징계만 해도 저 애들에겐 치명타가 될 텐데. 나의 마음도 굳는다.
학년 부장과 생활 지도계는 빠르게 아이들이 든 컵의 내용물을 맛본다.
“뭐야, 이거?”
“사이다 먹고 있는 거야?”
반장이 오히려 이상한 듯 묻는다.
“선생님이 안 된다고. 우릴 믿는다고 하셔서요. 기분은 내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