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몸담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오 년만 해야지 했는데 방학을 열 번 지내고 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고 나는 또 오 년만을 되뇌고 있었다. 그 오 년이 벌써 얼마나 지나갔는가.
지난주, 내가 맡은 학년의 아이들로 해서 선도위원회가 두 번이나 열렸다. 하나는 다른 학교 아이와 휴일에 싸움을 한 건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끼리 기절 놀이를 해서였다. 상급생인 아이가 인터넷에서 배워왔다는 그 놀이는 특공대대원들이 쓰던 기법의 하나로 당사자가 숨을 잠깐 멈추고 있는 사이 기도 부분을 눌러 잠깐 기절시키는 놀이라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은 서로 자기를 기절시켜달라고 졸랐고 점심시간 화장실에서 놀이하다가 한 학생이 깨어나지 않아 뺨을 때리고 난리가 난 것을 순회를 돌던 교사가 보고 알아낸 일이다.
각 반의 담임들을 불러 연루된 학생들을 조사하니 무려 열세 명이나 연 걸리듯 걸려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기절시켜주는 것에 재미가 들려 있었다.
일단 머리가 어지럽다는 아이는 부모님을 오시라 해서 병원에 가게 하고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반성문을 쓰고 부모님을 오시라 했는데 벌써 일 년 동안 서너 번 이상 학교에 오신 학부모님이 태반이었다. 부모님을 오시라고 하면 처음엔 한결같이 다 우리 아이는 너무나 착하고 여태껏 아무런 말썽이 없었는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신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후 아이가 변했다는 말도 하신다. 그러나 상담을 하다 보면 친구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학생이 문제인 경우가 많으며 특히 아버지가 너무 엄해 어머니가 학생의 모든 사안을 감싸고 돌 때는 백발백중이다.
이번에도 k, J, Y가 해당되었다. 특히 K의 어머니는 지난 학기에도 두 차례나 선도위원회에서 발언하셨고 그때마다 아이로 인해 너무나 죄송스러우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가정에서 애쓰겠노라는 말을 하신 분이다. 처음 K의 담임으로부터 학생 사안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당당하게 초등학교 선생님 탓에 아이가 그 이후로 너무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담임이 좀 더 아이에게 많은 배려를 하고 신경을 써줘야 함을 역설하신 분이다. 나는 한 반에 무려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는데 K에게만 배려하고 신경 쓴다는 건 공평치 못하고 학교의 몫과 함께 가정에서 기초생활 습관과 태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였다. K와 처음 면담할 때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하자 '감옥 가면 그만이죠'라는 말을 해서 너무나 놀랐는데 무조건 자녀를 믿고 그 아이의 행동을 칭찬하기만 하는 어머니의 태도에 충격이 왔던 것이다.
K는 교내봉사를 몇 번 하다가 결국 수련회를 앞두고 사회봉사를 나갔고 봉사 기간 15일이 지나 학교로 돌아온 바로 그날, 또 사건의 주요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교사가 있는 자리에서는 멀쩡하지만 자기보다 힘없는 친구들을 때리고 협박하고 심지어는 '시신경을 끊어 놓겠다'라고 폭언을 일삼는 아이들이 요즘의 학교에는 있다. 그러나 의무교육이 된 중학교에서는 이들을 벌주고 관리할 프로그램이 사실상 없다. 그저 타이르고 야단치고 매도 때리다가(이제는 사랑의 매란 이름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도 안되면 사회 봉사시키고 가장 무거운 벌이 권고전학인데 그것도 강제성은 없다. 자기 학급에 그런 학생이 있으면 담임은 그 아이를 관리하느라 바빠 다른 선량한(?) 학생들은 뒷전이기 쉽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은 기본이니 늘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그런 데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포함해 그 애들까지 신경 쓰다 보면 정말 미안하게도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들은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나는 지나치게 열정적인 교사였다. 우리 반과 나는 운명공동체였고 하나가 죽으면 전체가 문제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였다. 나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가 아팠고 가슴도 아팠다. 정말 어려운 아이들도 많았으며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 힘이 미치지 못할 때 나는 무기력해졌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내가 도울 수 없다는 무력함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 나는 아이들의 문제와 나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와 나를 객관화하고 아이의 문제를 내 문제로 가져오지 않는다.
새는 스스로 알을 까고 나와야 하듯이 누구에게나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써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어린 제자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초임교사의 처지에서 보면 다소 냉정한 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기 자식같이 이쁘고 정이 간다 해서 그들의 문제를 교사가 전부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 나도 시간의 힘에 의한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이다.
K를 비롯한 아이들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나에게 온다. 선생님과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도 하며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그 반성을 기초로 한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이 정말 이번 기간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의 알을 깨고 나와 자기들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훗날 다시 만나면 그땐 그랬었지, 옛말을 하며 깊은 이해와 공감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쓸 자기만의 진지한 시간이 정말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