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
그러나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만화 한 컷을 공책에 오려 붙이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과제를 내주시곤 했다.
처음엔 힘들기만 했던 그림 그리기가 조금씩 수월해지더니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원본과 흡사하게 그려질 즈음에는 우리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어리기 짝이 없는 2학년생에게 도무지 가당키나 한 과제였을까마는 선생님의 열정을 당해낼 힘이 우리에겐 없었다. 일 년 내내 우리는 컷을 오리고, 그렸고 그로 인해 그림에 조금씩 자신이 붙어갔다.
내가 한때 만화가가 되려고 잠시 생각했던 것도 모두 선생님의 그림 숙제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결혼을 하셨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이 좀 길고 까무잡잡하며 조금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지셨던 선생님.
아니, 어쩌면 나의 이 기억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선생님을 떠올리면 하얀 백지를 대하듯 모든 게 막막해진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기억이 저절로 먼 거리에서 걸어 나와 추억의 장면을 펼쳐 주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셨다.
그때는 제목을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는 노래 제목을 찾아냈고, 불렀고 가슴에 담아 두었다.
정든 이 계곡을 떠나가는 그대의 정다운 그 얼굴
다시 한 번만 얘기하고픈 목장의 푸른 잔디밭 위
언덕을 넘어서 가던 그날 수선화가 피어 있었네.
잊지 말고서 다시 오려마. 아아, 목동이 사는 계곡
나의 어린 시절의 깊은 저수지에 이 노래는 남아 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아련한 슬픔과 그 슬픔을 극복하는 애잔한 정서를 어린 시절의 나는 알았던 것일까? '다시 한번만 얘기하고픈'에서 선생님의 목소리는 다소 가라앉아 있었는가?
안타깝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이 노래를 듣고 불렀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이 노래는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남아서 잔불을 지피고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세월이 가도 사랑이 남는 것처럼.
잊지 말고서 다시 오려마. 아아, 목동이 사는 계곡.
인생이 팍팍하고 외롭고 쓸쓸할 때, 그리고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여겨질 때,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혼자서 눈물을 삭여야 할 때, 눈물의 찝찔함을 가슴으로 껴안아야 할 때, 나는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러면 기억 저 너머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얼굴에 미소를 짓고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나의 선생님이, 아니 홍하의 골짜기에 아직도 남아 있을 그 젊은 목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