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 번쯤은 두바이쫀득쿠키 감별사가 되어보세요.
지난 해 가을부터 조용히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두바이 쫀득 쿠키...
두바이 초콜릿의 첫 유행은 사그라들었지만
두바이 초콜렛 속 재료의 변주를 통해 탄생한 독창적인 K-디저트 두쫀쿠는
입소문을 등에 업고 엄청난 전성기를 맞았다.
자꾸자꾸 눈에 들어오는 그 이름, 두쫀쿠.
가격이 비싸고 중독성이 있다길래 한 번도 먹어보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름이 너무 귀여운 탓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두쫀쿠' 단어가 불쑥불쑥 생각났다.
'어디, 배달로라도 한 번 먹어볼까?'
클릭하는 곳마다 보이는 글자, '다 팔렸어요'
그 인기는 생각 이상이었는지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검색하는 곳마다 품절이었다.
밤 늦은 시각, 심심했던 탓에 배달어플에 들어가 계속해서 생각나는 그 이름을 찍어보았다.
'두바이 쫀득' '두바이' '두바이쫀득쿠키' '두쫀쿠'
계속해서 검색하던 끝에 찾은 주문 가능한 가게.
두쫀쿠 3알 + 음료 한 잔 세트 이만천오백원 ?!
관심이 없던 때에는 쳐다도 안 봤을 가격과 구성이지만,
호기심이 극에 달해 주문을 넣어보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가격이다. 치킨 한 마리 가격을 상회하는 주문금액..!)
도착하신 귀한 그것을 어디서 들은 대로 전자레인지에 8초가량 돌리니
약간 더 촉촉하고 말랑해진 모습이었다.
크기가 워낙 작아 아껴 먹고자 주방가위로 콩알만하게 조각 조각 잘라서 한 입씩 음미하였다.
"음~ 식감도 특이하고 조합이 독특한 게 맛이 있긴 하네. "
겉에 둘러진 발로나 코코아 가루가 특히 맛있었다.
코코아 가루의 쌉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초콜릿 향과 속에 든 화이트초콜릿의 달콤함이 조화로웠다.
"맛있긴 한데, 그렇게 자꾸 먹을 정도로 중독적인지는 모르겠다."
이 때는 '이렇게 한 번 먹어본 걸로 끝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뒤, 왜인지 그 고급스러운 코코아 향과 바삭한 식감이 자꾸만 떠올랐다.
'콰자작' '콰삭콰삭' '와그작와그작'
원시시대 때부터 곤충을 씹어 먹던 탓에 인류가 튀김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마 진실은 아닐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호모 사피엔스인가보다.
'다른 집은 맛이 어떤지 한번 더 먹어봐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뒤 먹어본 그 맛은, 첫 가게의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여기는 진짜 마시멜로우 피를 썼나보다. 피가 더 많이 녹고 마시멜로우의 풍미가 더 풍부하네.'
속도 조금 더 달콤했다.
'첫번째 가게에서 만들었던 속은 기름맛이 많이 나는 거였구나.
그리고 그 가게의 피는 마시멜로우피가 아니었나봐. 이렇게 녹지 않았었는데.'
비교군이 생기자, 마치 와인 소믈리에처럼 두바이 쫀믈리에가 되어갔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이 여러 가게에서 먹어본 까닭에 그렇게 후기를 구체적으로 쓰는 거였구나.'
그날 밤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컵라면이나 사둘까 하고 편의점에 들렸다.
냉장 코너에 '카다이프쫀득볼' 디저트가 진열돼있었다.
가격도 시중 두쫀쿠 가격의 반 가격이라 얼른 하나를 집어들었다.
다음날 맛본 세븐일레븐 '카다이프쫀득볼'은 엄밀히 말하면 두쫀쿠는 아니었다.
겉은 마치 생초콜릿 질감의 초콜릿과도 같았고,
속도 두쫀쿠의 고소한 견과류맛과 바삭바삭한 카다이프가 섞인 축축한 속이 아닌,
와사비 질감에다 시판 아이스크림의 인공적인 피스타치오 향이 나는 필링이었다.
아마 편의점에서 파는 이 디저트만 먹어본 사람은 두쫀쿠에 대해 오해를 할지도 모르겠다.
'별로 맛 없네. 피스타치오맛이 뭐 어쨌다는 거지'
두쫀쿠가 어떠해야 한다는 법칙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처음 개발했던 사람이 의도했던 바가 있었겠지만,
전국적인 열풍 탓에 자영업자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두쫀쿠는
방방 곡곡에 계신 수십만 사장님들에 의해 여러가지 맛과 형태로 재탄생되고 있다.
가게들 뿐 아니라 기업들도 여러 형태로 두바이 디저트를 내놓고 있다.
나는 살면서 딱 한군데 회사만 다녀봤는데,
첫 직장에서 오랜 기간을 일하면서 '일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될 만큼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상사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기분과,
그의 바이오리듬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의 기준,
그것에 하염없이 휘둘리는 나와 다른 직원들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부당한 상황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주어지는 일을 해내야만 하는 것도 너무나 맛이 없었다.
근로를 하거나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고통과도 같다고 생각했고,
'경제적 자유'를 갖고 싶었던 이유도, 무언가를 하고싶다는 긍정적인 동기보다는
'일을 해야만 하는 근로자의 삶을 그만두고 싶어서' 였다.
하지만 살다보니, 세상에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 재미있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도 계속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일은 신성한 것이라 하며 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뜻을 현실에서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조금씩 생각을 바꾸어 갔다.
그러고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모두 일하는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일을 하며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세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많은 발전을 해왔다.
첫 회사에서 만난 직장 상사, 첫 회사에서 맡은 직무...
돌이켜보니, 한 회사만 다녀본 나에게는
일에 대한 다채로운 경험이 없었다.
처음 맛본 두쫀쿠가 맛이 없었다 하더라도,
모든 두쫀쿠의 맛이 똑같을 거라 생각하고
'난 두쫀쿠가 별로야' 하고 결론짓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에 맛보게 될 두쫀쿠는 너무나 맛있어서 매일같이 생각날 정도로 두쫀쿠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첫 두쫀쿠는
먹는 동안 내내
'내가 두쫀쿠를 분명히 먹어봤는데, 남은 생에 다시는 두쫀쿠를 먹고싶지 않아.'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두쫀쿠를 바이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휩쓸려 한번 더 먹어보려는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 맛있는 두쫀쿠도 있어. 정말 다양한 두쫀쿠가 있더라.' 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의 소리가 나에게 들려왔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내가 먹어본 나의 첫 두쫀쿠는 비록 나에게 맛이 없었지만,
세상의 다양한 두쫀쿠를 맛보지도 않고 두쫀쿠의 맛을 한정짓지 않기로.
더 맛있는 마시멜로우 피와 더 달콤한 속을 가진 두쫀쿠가 있다고 믿기로.
심지어 나만의 두쫀쿠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