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 테스트는 인간이 기계를 시험하던 시절의 발명품이다. 대화만으로 상대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그 기계는 지능을 가졌다고 간주한다. 지능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고 통과 여부만 남겼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영리했고, 꽤 오랫동안 유효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시험관이 아니다. 이미 시험장 안에 들어와 있다.
채용 알고리즘은 이력서를 걸러내고, 추천 시스템은 취향을 분류하며, 신용 평가는 삶의 안정성을 점수로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판단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모델링 가능성이다. 기계에게 좋은 인간은 경력이 일관되고, 선택 이유가 설명 가능하며, 행동 패턴이 예측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설명을 요구받는다. 왜 이 공백이 생겼는지, 왜 방향을 바꿨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불리하고, 설명되지 않는 선택은 위험하다.
흔히 말한다. 기계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이 중요해진다고. 하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기계가 원하는 건 인간다움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너무 인간다운 인간, 손해인 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명확한 목표 없이 방향을 바꾸며 이유를 묻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인간은 기계 입장에서 다루기 어렵다. 최적화되지 않고 관리 비용이 든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다움은 환영받지 않는다.
만약 기계가 비효율, 감정, 비논리성을 인간의 지표로 삼기 시작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일부러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의미를 강조하고 감정을 드러내며 쓸데없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비논리성은 전략이 된다. 인간으로 분류받기 위한 연기, 목표 함수만 바뀐 최적화다.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튜링 테스트에서 기계가 인간을 흉내 냈던 것과 정확히 같다. 이제 역할만 바뀌었을 뿐이다.
Interstellar에서 머피는 말한다. “It’s necessary.” 왜 필요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증명도 없고 성공 확률도 모른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다. 이 말은 설득이 아니고 채점을 통과하기 위한 답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문장도 아니다. 그냥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태도다. 중요한 건 머피가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누가 평가할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 행동은 연기가 아니었다.
인간다움에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보여주려는 순간 사라진다.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비효율을 선택하는 순간, 인간다운 선택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행동은 이미 계산 안으로 들어온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아도 계속하는 선택, 손해를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집착, 이유를 묻는 질문 앞에서 침묵하게 되는 행동은 연출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재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험은 “얼마나 인간다운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선택을 왜 설명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 정말로 비합리적인 걸까, 아니면 인간으로 분류받기 위해 연기하고 있는 걸까. 인간다움은 보여줄수록 옅어지고, 의식하지 않을 때만 남는다. 우리는 이제 인간이기보다 인간인 척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더 어렵게 얻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