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홀로 방문한 건 세 번 째이다. 처음에는 관광 목적으로 렌트한 자동차로 한 바퀴 돌곤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번 3일 동안은 세화항구 쪽에서만 쭉 머물렀는데 볼거리도 없고, 찍을 것은 더더 없었다. 저녁 6시 이후만 되면 깜깜하고 조용하다. 오랫동안 출항을 못한 것으로 보이는 낡은 어선들을 보니 그게 왜 그렇게 좋은지ㅎ 또 이름 모를 잡화점에서 팔고 있는 멸치국수를 제주막걸리에 곁들여 먹었는데 너무 행복했다.
제주도의 의미가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포함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변한 듯하다. 이전에는 신혼여행 겸 이국적인 풍경을 통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관광지로서 제주도를 바라봤다면, 이제는 수도권과 다른, 현무암으로 덮힌 사람 없는 적막함이 좋아서 제주도를 찾는 것 같다. 이건 제주도뿐만 아니라 강릉, 양양, 무주 같은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생활권이 이렇게 자리 잡은 듯하다. 대도시에서는 돈을 벌고 사람이 점점 빠지는 지방에서는 그 돈을 쓰며 피로를 달래는 패턴 말이다. 정 여행 느낌을 가지고 싶다면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으로 가면 될 일이다. (그게 더 저렴할 때도 있다ㅜ) 지자체에서는 인구감소로 고민이겠지만, 결국 그 빈자리들이 지방 특색과 어우러져 도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제주도나 강릉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나타날 것 같다. 지방소멸이야 걱정스럽지만 개인으로서는 기대되는 마음도 있다.
+이번에 오른(Orrrn)이라는 꽤 괜찮은 카페를 방문해서 좋았다. 드라이빙하다 발견해서 갔는데 내/외부가 아름다웠고 나름 유명한 곳인 듯했다. 여기서 3~4시간 정도 머물며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는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비 오는 날에 갔는데, 맑은 하늘과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지만 비 오는 날에도 운치가 있어 강추한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변한다는 점을 카페를 볼 때마다 느낀다. 사람들이 자주 머무르는 곳 중 주거지나 오피스 등은 인테리어가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카페나 레스토랑은, 특히 카페의 경우 커피라는 하나의 메뉴 외에 다른 것으로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기 때문에 2~3년마다 바뀌는 인테리어 트렌드에서 그 노력을 볼 수 있는 듯하다. 요새는 인스타 갬성의 카페라는 게 유명하고, 나 같이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은 거기서 즐거움을 누리는 듯하다. (외국 나갈 때마다 느끼지만, 도처에 쉴 만한 이쁜 카페가 많은 건 안전, 인프라 외에 우리나라 최대 강점이다.) 한 가지 궁금한 건 요즘 인스타 감성의 카페들 중 오른처럼 시멘트와 그 이음새를 그대로 드러낸 카페들이 왜 생겼나 하는 점이다. 투박할 수도 있는데 나도 분명 거기서 갬성을 느끼고 있고.. 다만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네팔에 갔을 때 이런 인스타 갬성 건물들을 많이 봤다. 돈이 없어서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못했기 때문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