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기로에 서보다
8월의 터키는 관광객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의 햇빛은 사람들을 저격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도 늦잠 자길 좋아하는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난 이유도 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에잔(Ezan)은 이슬람의 찬송가로
온 도시가 시끄러울 정도로 높은 볼륨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터키가 무슬림 국가인지는 하루면 충분했다
호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참아 줄 만한 신고식 아닐까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4세기부터 콘스탄티노플 수도로 불리며 1453년 투르크에게 멸망하기까지
흥망을 거듭한 자국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유럽사에서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그 역사는 정지하지만,
또한 우리가 아는 세계사는 여기까지만 서술하지만,
이 화려한 도시는
투르크 세계에서도 계속 존재했고 지금까지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서있던 이스탄불은 또 다른 전환점에 있었다.
이스탄불에 오면 첫방문해야 할 곳은 성 소피아 성당일 것이다.
내가 방문할 당시에는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한쪽 부분을 온전히 볼 수 없었다.
투르크의 술탄이 콘스탄티노플 침략 당시
이 성당 훼손만은 저지하면서 지켰지만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벽화가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천장들을 감싸는 이슬람의 문장들이 보였다.
이 문장들은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 기도할 때 참고한다.
둘 간의 묘한 동거는 성 소피아 성당 곳곳에 보였다.
살아남은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은 소중했던 성당의 모습이 바뀌는 걸 보며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한 평생 함께한 종교를 하루 만에 바꿀 수 있었을까?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현재의 이스탄불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오스만 튀르크로 한정지을까?
아니면 과거 비잔티움 제국까지 그들의 정체성으로 삼을까?
좀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할 시간이 왔다.
탁심광장에서 서점을 찾았다.
탁심 광장은 13년에 반정부 시위기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서점 이름이 악마(메피스토) 이름으로 짓다니 좀 섬뜩하다 생각되지만..
사실 악마라는 존재는 이 사람들에게 아주 거리감을 두어야 하는 존재는 아닌 듯하다.
왼쪽의 파란색, 노란색으로 조합된 장식은 악마의 눈으로 자기보다 약한(?) 악마들을 쫓아낸다고 한다.
오른쪽 1984 책은 아예 이걸 노렸는지 책 장식에 달았다. 책 주제와도 잘 조합되는 듯하다.
서점의 첫인사는 소설들이었다.
한 벽면에 소설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전 소설부터 시작해서
현대 소설들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기서도 사랑받나 보다.
코너 한쪽에는 심리학 책들이 진열돼있다.
프로이트는 어디서나 인기 있나 보다.
반갑게도 한국 지은이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진열되어 있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다.
사실 영국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에서도 유명한 교수다.
돌아다니다 문득 깨달은 게 있다.
내 눈에는 영어권, 유럽권 작가의 책들이 더 많이 보였다.
위 사진에서는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Russell)과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POE)의 책들도 진열되어 있다.
의외로 이슬람권 작가라 생각되는 책들은 보이지 않는다
위의 사진에 나온 책 중 'Allah de Otesini Birak'라는 글자가 보인다.
구글 번역으로 직역하면 '알라 신이 도망간다'라고 번역된다.
어떤 종교보다 엄격하다는 무슬림 사회에서 이런 표현까지 쓴 책이 있다니
아무래도 세속주의에 익숙한 터키 사회가 엿보인다.
물론 이슬람에 대한 책들이 없지는 않다.
Dincilik: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책부터
Kuran I Kerim In Gizli OgreTisi: 쿠란 가르침에 접근하기까지
이슬람에 대한 책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Turkey Beyond Nationalism: 국가주의를 넘어서려는 터키
Turkey and The Dilemma of EU Accession: EU 가입과 터키의 딜레마 등
세속국가로서의 고민들도 보였다.
2014년의 터키는 분명 어떤 기로에서 서있었다.
눈에 띄게 빠르고 명징해 보이지 않았지만.
점진적이었다.
이스탄불 거리를 거닐다 블루모스크를 지나가면 우리는 터키의 한 쪽면을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서방 세력의 오도와 그에 대한 비판이었다.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관계에서 이스라엘이 다소 가혹한 모습을 보이고,
서방 언론이 그것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슈에 관한 터키의 입장이 어느 쪽인지도 위 사진들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근대 터키는 아타투르크에서부터 시작된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는 터키어를 영어로 쓸 수 있게 개정하고,
국가가 이슬람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세속주의를 선포했으며,
터키 근대화에 많은 노력을 들인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그를 기리며 아타투르크 (터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EU 가입까지 노리던 터키가 어느새 유럽을 등지고 쿠란을 다시 읽는 듯하다.
2016년에 일어나 군부의 쿠데타 사건은 시민들에게 저지 당했는데,
이는 세속주의의 상징인 군부를 거부하고,
종교주의적인 대통령 에르도안을 지지를 밝힌 사건이다.
우리에게 익숙치 않는 이슬람 세계로 들어가려는 터키는
이방인일까? 형제일까? 친구일까? 익명의 누구일까?
이것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