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김치부침개가 싫다고 하셨어
13살, 초등학교 6학년 첫째는 입이 짧다. 좋아하는 음식이 손에 꼽히는 정도.
김치부침개, 참치마요덮밥, 구운 삼겹살, 동네 치킨칩의 양념치킨, 치즈가 들어간 라면. 먹는 거 좋아하는 엄마 맘에 탁 들게 잘 먹는 음식은 이게 다인 것 같다. 저걸 제외한 나머지 음식들은 죽지 않을 만큼만 먹는다.
오늘도 김치부침개 노래를 부르는 첫째를 보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첫째가 5살 무렵 전남편은 회사를 그만뒀다. 갑자기 프리랜서로 일하겠다며, 사업자를 내겠다고 했다. 막막했지만 자신 있어하는 그를 믿었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5살 아이와 2살 아이를 키우던 나는 그저 나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빡빡한 생활비를 가지고 매 끼니마다 뭘 해먹여야 할까, 가뜩이나 안 먹는 아이의 입속에 어떤 영양가 있는 맛있는 걸 넣어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쯤 어느 날인가 수중에 딱 2천 원이 남았다. 신용카드도 없고, 꿍쳐둔 비상금도 다 쓰고 냉장고에 꽁꽁 감춰둔 고기며 생선이며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이리저리 버티고 버티던 차였다.
바보같게도 나의 궁상이 부끄러워 누구에게 도와달라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뭐라도 있겠지 냉장고를 뒤지며 애가 먹을 수 있는 게 없겠는데 고민하던 내 눈에 쉬어 꼬부라진 김장김치통이 보였다. 하필 어릴 적 엄마가 주전부리로 해주던 밀가루를 반죽한 다음 김치에 양념을 해서 넉넉한 기름에 바삭하게 구워낸 김치부침개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2천 원을 들고 동네 슈퍼로 가 작은 부침가루를 사고, 시어버린 김치를 물에 탈탈 헹궈 매운 기를 씻어 내고 설탕이랑 깨를 넣고 간장으로 양념해서 밀가루에 부쳐냈다.
저녁 반찬으로 내어준 영양가 하나 없는 김치부침개를 5살 첫째는 엄마가 해주는 건 다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들고 먹었다.
지 엄마 속도 모르고.
사실 아직도 난 김치부침개 생각을 하면 울컥한다. 거의 10년이 다 된 이야기에, 그 주 주말쯤엔 현금이 좀 융통되었던 거 같은데. 궁상맞게 살림하던 내가, 그걸 또 맛있다며 먹어준 첫째가 애달프고 슬프다.
애미 맘은 어떨지언정 입 짧은 첫째가 맛있게 먹어주는 반찬이 생긴 거에 위안 삼으며 어느 날은 참치를 넣어보기도 하고, 오징어를 넣어 특식으로 만들어줘도 그저 설탕에 깨를 넣고 간장으로 양념을 한 그 부질없는 밀가루부침개만 찾는다.
그때보다 살기가 훨씬 나아진 요즘도 뭐 먹고 싶니 물어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그 김치부침개 타령이다. 짜장면도 있고 고기도 있고 치킨이랑 피자도 있는데 참 한결같이 김치부침개다.
첫째가 좋아해서 자주 하다 보니 이제 둘째도 잘 먹는 메뉴가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셋째도 잘 먹는 특식이 되어버린 김치부침개. 나는 먹지도 않는 그놈의 김치부침개.
매번 만들 때마다 지지리 궁상맞던 그날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리다.
3년 만에 가게 된 체험학습 도시락에 김치부침개를 싸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첫째를 보며 엄마는 참 씁쓸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