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은세 Aug 20. 2023

아버지의 섬

아버지의 섬과 화해하기까지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섬에서 나고 자라 섬에 묻혔다.

당신의 부재(不在)를 나는 자주 원망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섬에 나는 돌아와서 요리를 했다.

넉넉한 바다, 돌우럭과 한치. 새우와 아귀. 벵에돔, 보말, *구쟁기, 거북손, 전복.

구좌에는 당근과 감자, *패마농, 모슬포에는 *마농, 영평에는 감귤, 가파도의 청보리, 중문의 *푸른콩.

한라산 굽이굽이 먹고사리, *초기, *산마농, *양애.

손으로 움켜쥐고 칼로 다지고 뭉근하게 끓여 *낭푼 가득 담았다.     


아버지의 밭과 산, 바다.

불을 지피고 밥이 익는 긴긴밤

긴긴 화해를 했다.     


먼 훗날

나의 사계가 저물어

제비꽃 한 송이 꺾어 들고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말해드리리라.

아버지의 섬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당신에게 그랬듯

내게도 얼마나 베풀어주었는지.

당신이 좋아했던 옥돔 한 마리, 동태 전 올려

한 상 가득 차려드리리라.    


--

 

* 구쟁기 : (제주어)뿔소라

* 패마농 : (제주어)쪽파

* 마농 : (제주어)마늘

* 푸른콩 : (제주어)푸른독새기콩

* 초기 : (제주어)표고버섯

* 산마농 : (제주어)달래

* 양애 : (제주어)양애나물

* 낭푼 : (제주어)양푼, 큰 그릇

매거진의 이전글 1st Concerto "가을" 2악장 '매우 느리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