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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Aug 25. 2024

동주(東柱)

곧 하지구나. 그래, 여름밤은 짧았다.

짧은 여름밤이 지나고 이제 해가 뜨는구나.

무성했던 나의 여름은 곧 지겠구나.


나는 안다.

너의 여름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먼 곳의 육첩방에서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서

별을 헤던 너의 젊음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동주(東柱)야.

저 하늘의 별처럼 짧고 아름답게 살았던 네가 결국 보지 못했던 조국의 광복을

촛불처럼 사그라든 네가 결국 누리지 못했던 청춘을

나는 부끄럽게도 이토록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섬, 아버지의 고향.

이 땅의 밭과 산, 바다.

서로 지난하게 아끼고 스미며 때로 부딪히고 용서를 주고받아온 이름들.

어머니, 동생들과 친구들.

나 또한 너로부터 젊음을 빚진 이 땅의 젊은이었다.

네게 빚진 나의 청춘은 몹시 아름다웠다.


네가 그토록 사랑한 우리말로 쓴 시는 내게 오랜 위로였다.

내게 요리는 칼과 도마로 쓴 시다. 들뜬 왈츠고 시고 떫은 그림이고 맵고 쓴 고백이다.

이 땅의 소산들로 나는 시를 쓰고 요리를 하겠다.

열정이 곧 고통일지언정 성실하고 지난하게, 또 격앙되고 고조되고 예민하게 나는 창작 행위에 스스로를 던지고야 말겠다.

때론 쓸쓸하고 서글플 가을을

네가 끝내 맞이하지 못한 아름다운 계절을

너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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