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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Sep 06. 2023

비가 내렸다.

자꾸 메마르고 가난하던 나의 호수.

한때 마음 애태워 가꾸던 백리향,

무성하던 아카시아,

밤새 네게 젖었다.

네가 비로소 와주었다 하여

여전히 아름답고 달콤하지마는

진 꽃이 다시 피지 않는다.

지난날의 조각들을 주워모아본들

작은 잿더미에서 보잘것없는 불꽃을 살려내 본들

누가 나의 노래를 듣겠는가.

어리석고 서투르던 그 시절,

나의 시는 가난하고 참담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산도 피워내지 못했다 하여

네가 준 삶이 비루하겠는가.

운명은 갈망하는 이들의 삶을 방황하게 하였지마는

흔들지언정 부수지 않는다.

젊은 날, 불처럼 뜨겁고 충동적이며 꽃을 꺾고 환상에 취하던 그 시절처럼

폭풍우가 되어 다시 내게로 와다오.

다시는 동굴에 숨지 않으리라.

밀밭의 밀, 사과나무, 돌멩이고 흙이고 잔디풀이었던 나는

이제 네게서 도망치지 않으리라.

온몸이 흠뻑 젖어 뼛속까지 시릴지라도

나는 네가 몸서리쳐지도록 그리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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