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차가운 밤바다에 고래가 살았다.
몸이 구만 리에 이르는 *곤(鯤)이, *붕(鵬)이 되지 못한 물고기는 슬프게 울었다.
나는 그와 만나고 싶어 시린 바다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디로든 갈 수 있었던.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빛나는 날들은 꿈처럼 흘렀다.
어둡고 축축한, 너와 나의 바다.
이미 봄은 지났건만 나는 왜 너를 그리도 괴롭혔던가.
미안하고 미안하다.
해가 뜨거들랑 떠나거라.
둥게둥게 새벽이 새는 *갯모슬 어귀든
*폭낭 한 그루 롱실롱실 싱근 *산모슬 골짜기든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거라.
*산굼부리마다 피어난 꽃보다 피지 못한 꽃이 훨씬 많건만 피지 못 했다 하여 꽃이 아니겠는가.
한 줌의 흙, 너와 나의 땅.
봄이 오면 같이 일구며 살아가자꾸나.
*산마농이영 *지름이영 심어 두고 하영 살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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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鯤) : 《장자·소요유》에 등장하는 북해에 사는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 물고기. 커다란 새, 붕(鵬)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닌다.
* 갯모슬 : (제주어)바닷마을
* 폭낭 : (제주어)팽나무
* 산모슬 : (제주어)산 마을
* 산굼부리 : (제주어)산골짜기
* 산마농 : (제주어)달래
* 지름 : (제주어)유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