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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Dec 04. 2022

우리 주변 삶이 곧 환경이었다

#1. 첫 번째 이야기. 이윤희 동시통역사






1. 통역사는 주도적인 삶을 살게 해 주는 직업이에요.



저는 취업할 자신이 없었어요. 학점이 높은 것도 아니고 전공이 취업에 유리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통번역대학원은 저도 받아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반드시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상위권 대학을 졸업해야만 통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제 스스로 영어가 탄탄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 공부하며 준비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 조건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입학시험 하나로만 선발을 한다니, 저에게도 기회가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아서, 회사 한 군데에 면접을 봐 두었어요. 그런데 인생이란 게, 우리가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가 가야 할 길로 열리더라고요. 만약 그 통역사가 되지 않고 그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저는 저와 맞지 않는 곳에서 숨 막히는 인생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통역사가 되니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어요. 일정 관리를 혼자 해야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내가 부담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내 시간을 내가 활용한다는 점에 있어서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요. 보통은 봄과 가을이 통역 성수기라고 부르는 기간이에요. 그럼 저는 여름에는 따로 휴가를 쓰지 않아도 놀러 갈 수 있어요. 자연스레 리프레시가 되어 또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다 바뀌어버렸어요. 이제는 성수기라는 개념도 없이 연중 내내 통역 일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을 애써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요.





그리고 통번역이라는 기술은 평생을 쓸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게 매력적이죠. 물론 갈고닦는 노력을 계속해야 돼요. 저는 지금도 영어 훈련을 놓지 않아요. 아무리 실컷 놀다 들어온 날이라도 꼭 영어 콘텐츠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요. 그건 저와의 약속이거든요. 졸업하고 통역사로 활동한 지 8년째인데, 기본적으로 소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관리한다는 기본을 지키려고 합니다. 축구를 좋아해도 소리를 질러야 하는 직관은 하지 않고, 찬 음료 대신 따뜻하게 마신다던지 하면서요. 제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호가 있어도, 기본을 지켜야 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상 제가 타협하지 않는 부분을 두고 애써 지키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 더 오래 통역을 하면서 더 좋은 통역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만족하는 삶이라고 해도 그 안에 나름의 규칙이 있지 않으면
제 역할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그 규칙이 통역사로서 저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2. 다름을 통해서 세상을 배웁니다



통역 일이 오늘 다르고 내일이 또 달라요. 매일 다른 산업에서 정보를 전달하게 되는데요, 그게 참 재미있어요. 같은 주제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다루거든요. 또 어느 산업 현장에 가도 나오는 공통의 주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 주제가 해마다 바뀌는 것도,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서 신기하죠. 


다양한 시선을 받아들이다 보면 언젠가 이 점들이 다 선으로 연결되겠다, 정말 connect the dot이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로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어요.



올해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자주 만났어요. 어느 현장에 가도 메타버스 이야기가 꼭 나오더라고요. 블록체인 이야기가 쏙 들어갔어요. 그렇게 일 년을 주기로 새롭게 등장하고 또 저물어 버리는 키워드가 있는 한편, 여전히 힘을 받고 있는 키워드도 있어요.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는 오히려 해가 갈수록 더 자주 사용되고 있어요. 각 산업체가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고, 또 어떤 접근법으로 경영하고 있는지 보면서 저도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이 커지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도 환경이라는 단어가 마냥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 거죠.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런 까닭에 환경을 지킨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게 여겨진 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코로나로 인해서 물리적인 거리가 생겨버린 현실의 대안으로 메타버스라는 방안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메타버스에 대한 장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고 있어요. 생각보다 고민 없이 이 방법을 쓰는 산업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현실의 문제를 가상에서 해결한 사례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도 가상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메타버스와 지속가능성이 결합된 세상이 올까요? 



환경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실제 이뤄지고 있어요. 농업이나 패션 산업에서도 이제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통역 일을 하면서 여러 업계의 입장을 듣다 보니, 당연하지만 민간과 공공분야에서 각자 해야 할 역할을 양쪽에서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제도가 있다는 걸 무시할 수 없거든요. 기업이 자본력을 가지고 있지만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어요.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그 안에서 무엇이 막혀있는지, 어떻게 뚫어야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하거든요. 그 역할을 예술계에서 할 수 있습니다. 공격적이지 않고 감성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우리가 조금 안심하고 생각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봐요. 사계 2050이라는 오케스트라 연주 공연이 있는데요,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해서 연주를 해요. 기괴한 불협화음이 러닝타임 내내 연주됩니다. 사계 2050에 참여한 연주자를 인터뷰하는 현장에 통역을 갔는데, 연주자들도 공포심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직접적인 언어보다 더 여운이 오래가는 메시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다양한 시도, 다양한 경험이 연결될 것이라 생각해요. 적어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 인터뷰는 유튜브 <오와한자연> 채널에서 확인하세요 !


youtube: https://www.youtube.com/@owh_earth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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