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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Sep 23. 2024

8만원짜리 온천과 무료 수영장

아이슬란드에서 물놀이란


1.

- 신혼여행 어디로 가세요?

- 아이슬란드요.

- 와, 그럼 블루라군도 가세요?


아이슬란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오로라와 블루라군 인가보다. 오로라 봤냐는 말과 블루라군 가라는 말만 내내 듣다가 떠나왔는데, 정작 여행 4일 차가 될 때까지 온천에 들어가지 못했다. 빠니보틀님은 알려지지 않은 시크릿 라군 찾아다니시던데, 시크릿 라군이라고 검색하면 진짜 이름이 '시크릿라군'인 온천이 나올 뿐...

빠니보틀님의 아이슬란드 에피소드 중



레이캬비크에서 제일 가까운 위치에 블루라군이 있다. 위치도 좋고 워낙 유명한 터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는 링로드 투어를 끝나고 렌터카 반납하러 레이캬비크로 돌아와야 하니, 블루라군은 그때 가자며 우선 미뤄두었다. 그런데 막상 링로드를 따라 여행을 시작하자 가야 할 곳들과 볼 것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자연스레 숨겨진 온천을 찾을 시간도 체력도 없어지고, 온천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자꾸 후순위로 미뤄졌다.



2.

아, 무료 온천은 아니지만 무료 수영장은 들어가 보긴 했다. 사진만 보고서 무조건 가고 싶다 생각해서 구글에 야무진 하트도 달아놓았다. 산에 덩그러니 있는 곳이라 주차를 하고 나서도 꽤 걸어 들어가야 했던 곳. 옷을 갈아입을 시설이 있는지 샤워는 가능한지, 어떠한 정보도 없어서 조금 주저되긴 했다.


Seljavallalaug 라는 곳 (사진 출처: 구글맵)



여러분, 주변에 천막처럼 둘러싼 산 좀 보세요. 그 옆에 흐르는 하천도 좀 보세요. 이런 곳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니. 어푸어푸 수영이 아니라 그냥 몸만 담그고 있어도 황홀할 것 같은 풍경에 마음이 쏙 빼앗겨버린 나. (하트)  


Seljavallalaug를 구글맵에 표시하고 알려주는 길을 따라 들어갔다. 비포장도로를 좀 들어가다 보면 '개인 사유지입니다. 3시간 이상은 머물지 말아 주세요'라는 표지판이 있다. 3시간이나 놀 수 있다니 정말 generous 하신 분... 표지판을 지나면 곧 주차장이다. 수건이랑 간단한 짐을 챙겨 나오는데, 생각보다 주차장과 수영장 거리가 좀 많이 멀었다. '수영장 없어졌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수영장이 나오지 않아 그만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인내하고 계속 갔다. 체감상 30-40분? 걸어야 나오는 비밀의 수영장. 하지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에 하이킹한다 생각하고 걸으면 맘이 편하다.


기가 막힌 산을 눈앞으로 두고 걸어가는 길



그래서 이 수영장은 어땠냐, 하면 사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당황스럽긴 했다. 온천이 아니라 수영장(pool)이어서 그랬던 걸까. 안 그래도 추운데 물이 너무 찼다. 녹조가 가득 낀 초록물은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옷을 벗는 공간은 있지만 개방되어 있어서 (^^) 옷 안에 미리 수영복을 입고 가길 참 잘했더라. 남편은 물 상태에 기겁하며 안 들어갔지만, 산속에서 수영하는 경험을 포기할 순 없지. 난 씩씩하게 혼자 들어갔다. 춥고 미끌거리는 물에서 논 시간 약 5분. 짧은 경험이지만 여러모로 잊지 못할 추억이다.


생각만큼 황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신 없을 추억




3.

이렇게 산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료 온천이나 수영장 말고, 잘 알려진 유명한 온천은 주로 아이슬란드 남부에 몰려있다. 그러나 빡빡한 남부의 여행 코스를 하루하루 채우다 보니 온천을 가보지 못한 채 아이슬란드 북부로 넘어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지 않아도 되니 그건 바로 북부에는 미바튼(Myvatn) 온천이 있기 때문!


이미 여행 4일 차에 조금은 지쳐있던 우리. 미바튼 지역의 캠핑장에서 하루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온천엘 갔다. 입장권과 맥주 한잔씩을 추가했더니 무려 15만 원이 나왔다. 8만 원짜리 온천은 처음이다. 물에 유황이 섞여있기 때문에 변색될 우려가 있는 액세서리나 금속은 다 빼고 들어가라고 했다. 여유로운 샤워실을 통과하니 드디어 노천 온천이 나왔다. 흰 물감을 많이 넣은 듯한 하늘색 물에 몸을 담그니 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시원한 공기에 따뜻한 물. 거기다 주문했던 맥주 한 잔까지. 오전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최고지 뭐
미바튼 온천



구역마다 온도가 조금 다르다. 뜨거운 곳과 조금 미지근한 곳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너무 좋았기에 다른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미바튼온천을 꼽을 수 있다.


(주의사항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애플워치 끼고 들어갔다가 바로 고장 나 못쓰게 돼버리긴 했지만..)



4.

아이슬란드에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물에 한번 더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이번엔 수영장도, 온천도 아니다. 수온 2-3도의 물, 바다라고 해야 할지 호수라고 해야 할지,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 대륙의 판 사이를 흐르는 물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실프라(Silfra)는 레이캬비크 인근에 있는 골든서클 중 하나인 싱벨리어(Þingvellir) 국립공원에 위치해 있다. 실프라는 빙하가 녹은 물이 차서 입수가 가능한 곳인데, 여기서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 프리다이빙 등 체험 투어가 많이 열린다. 1년 내내 수온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물고기나 다른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지만 미친듯한 물 색깔과 신비로운 지형을 볼 수 있다.


한쪽 팔은 유라시아 대륙 판, 다른 쪽 팔은 북아메리카 대륙 판을 향해 뻗고 있다.


시야가 100m까지 나오는 맑은 물속은 생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이끼 생태계를 드러냈다. 비눗방울 같은 기포가 이끼처럼 돌을 따라 겹겹이 생겨있었고, 미역같이 흐물거리며 자라나서 또 다른 색과 형태를 이뤘다. 한 바퀴 돌자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이번엔 바닥이 돌이 아니라 모래였다. 물 색은 청량한 색 그대로인데 물감으로만 보던 색을 바다에서 보니 신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다이빙포인트라는 실프라, 입수 전에 이곳 물도 한 입 마셔봤다. 드라이슈트를 입어 체온은 유지되었는데 얼굴과 손은 그대로 물 온도에 노출되었다. 20분 정도 스노클링을 하자 수온 2-3도의 물이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바다가 생각나는 우리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바다는 조금 다른 의미일 것 같았다. 온통 검은 모래인 아이슬란드의 바다는 금빛 모래사장이 있는 우리 해수욕장과는 사뭇 이미지가 다르다. 저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은, 조금 무서운 대상이랄까.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고작 더워봤자 15-17도이라서 여름이라고 해도 바다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아이슬란드 사람에게 물놀이하면 떠오르는 게 온천일까? 뜨거운 물?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바다 가고 싶다'라는 말을 하려면 근교 유럽의 휴양지를 두고 하는 말일까?


검은모래해변



여름에 갈 수 있는 바다가 있어서 다행이고, 바다가 생각나는 더운 계절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올해는 그 더위가 좀 지나쳤지만, 그래서 여름이 너무 길어져버렸지만, 그래도 사계절이 있기에 -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기에 - 우리가 해수욕을 즐기고 온천도 좋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내 추웠다면 바다를 사랑할 수 없었겠지. 내내 더웠다면 온천을 찾아가지 않았겠지.




5.

미바튼 온천 이후로 아이슬란드에서 다른 온천은 가지 못했다. 블루라군도 결국 못 갔다. 약 10만 원 치(1인) 더 쓸 뻔했는데 돈 아꼈.. 아니, 아이슬란드에 다시 올 이유를 하나 남겨둔 거라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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