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의 코인 세탁소
마음도 몸도 가벼워져야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생긴다. 늘 하던 일만 하고, 가던 곳만 가고, 애써 사유하려 하지 않는 삶은 쳇바퀴 도는 햄스터와 다름이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주중에는 기꺼이 내게 돈을 벌게 해 주는 그 누군가를 위해 똑같은 트랙을 전력질주 하는 직장인의 삶에는, 곱게 갈아 만든 블루베리 스무디만큼이나 누군가의 영혼이 곱게 갈려 그 재료로 쓰인다.
몇 년째 나는 같은 패턴의 삶을 반복하고 있다. 주어지는 외부의 충격에 온몸을 방어하며 어쩌면 이리도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가끔은 내게 주어진 고고한 성격과는 다른 얼굴을 한, 싸움꾼의 말들을 퍼부어야 할 때 생기는 모멸감과, 같은 크기로 느껴지는 수치심에 마음이 놀라 몸도 함께 아프고, 나아질 때쯤 되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서서히 다시 쳇바퀴 속으로 들어간다. 결과가 없는 결심은 속절없다. 나는 아주 느린 달팽이가 되어 서서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종내에 내가 다다를 그곳이 내게 천국일지, 지옥일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삶일지, 나는 알 턱이 없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며’ 살아야 할 텐데.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그중에는 말 한마디 건네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본인보다도 그녀의 삶에 애정을 쏟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삶이 작은 씨앗이라면 거기에 물을 주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 잎이 떨어지고 시들어 버렸대도 차마 뿌리째 뽑을 순 없었던 마음이었다… 물을 주는 사람만이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 물을 받고 자란 이도 그를 사랑한다. 그 마음들이 종이 꽃잎에 실려서 저 먼바다로 향했다. 아마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새벽 2시의 코인 세탁소, 박현주 작
지난 5월 어느 날, 생일 선물로 작가님 친필 메시지와 함께 받은 책을 다 읽는 데 두 어 달 걸렸다. 학생 때의 어느 방학 두 어 달 동안 채 40권은 너끈히 읽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주말의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으려 하면 자꾸 손쉬운 유튜브 쪽으로 향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결국은 마음먹기에 따라 몇 시간이면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오컬트에 관심이 많은 재인이란 주인공의 시선으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대부분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서로 돕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재인이 발견하는 삶의 진실들 (진실이란 과연 누가 정의하는 것일지 모르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것을 찾아나가는 데 쓰인 도구들 (타로를 위시한, 오컬트 적이 장치들)이 꽤 흥미로웠고, 그 말미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단락을 위에 적어보았다.
4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를 쓴 작가님의 호흡은 (긴 이야기를 실제로 쓰는 건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새벽에 주로 아무도 없는 코인 세탁소에서 글을 썼던 작가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이 작가 후기에서 나온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가지는 장점들. 나는 그 시공간의 공기를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조용히 돌아가는 세탁기들 사이에 혼자 앉아서 초연히 나와 내 주변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 지금의 내게도 그런 시공간이 있다. 자판기를 두드리지 않는 것은 나의 게으름이자, 내 안에 아직 남은 어둠을 뚫고 나가지 않으려는 내 의지박약에 있다. 나는 아직도, 내 삶의 어떤 과정들에서 얻어진 부정적인 단면들을 받아들이고자, 혹은 그것들을 좀 더 밝게 바꿔나가 보자고 애쓰는 중이라서 그렇다.
선적적으로 단조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아니,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한 시공간에서 자랐을 뿐이다. 내가 익숙하게 느끼는 그 공기는 아주 어린 날 벽을 보고 앉아서 서예를 하던 나, 혼자 풍경화를 그리거나 책을 읽던 나, 그런 나를 바라봐 주던 할머니, 책장, 음악, 들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하다, 친밀한 관계였으며, 나는 입이 무거운 편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말로써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이나 외로움을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여나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해보지도 못했으면서, 지레 포기하는 건 나답지 않은데 이 부분은 지금도 하지 못한다. 어디선가 읽은 표현대로, 기대고 싶지만 기대면 그 받침대가 ‘부러질 것 같아서’. 그래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이 암흑을 고스란히 껴안고 가고 있다.
그렇게 마음에 자리 잡은 것들이 꽤나 커서, 삶의 다른 암흑을 받아들이기에 내 마음의 물 잔은 거의 꽉 차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안을 향한 감정들이 타인이 내게 주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고 있다. 이 생의 다른 사랑은 참, 어려워 보인다. 해서 나는 부단히 걸어야 한다. 마음과 생각을 비워야만 한다. 글을 써야만 한다. 다른 길을 알지 못하기에. 많은 일들을 해왔음에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이곳이기에. 지금 이 시공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물을 주고 있는 건 나일까? 아니면, 나는 물을 받고 있음에도 물 주는 이를 사랑하지 못하나?
저 노란색 책 표지만 내게 말을 건다. 마음을 똑똑 두드리며 노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