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by 장서율

바빠도 매일 글을 쓰면 좋을 텐데, 쉬이 에너지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감정이 차오르기 전에 체력부터 차 올라야 할 것이었다. 한 인간의 고독이 다른 이들과의 고독과 엮어 나름 즐겁고 목적 있는 삶을 찾아 떠나는 소설.

고요한 작가님의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를 읽었다.


결혼, 정말 하는 게 좋을까? 많이 생각해봤는데, 결론적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 아직 비교적 조금 어린 나이일 때 - 2세를 생각한다면 - 혹은, 아직 덜 계산적일 때 이 '경제 및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 맞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하지만 가족이 생기면 사랑의 불확실함, 연애감정의 급하강이나 급상승하는 기분이 점점 줄어들고, 편안한 마음이 지속되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전제는 경제적인 평등함, 존중, 그리고 대화가 된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혼은 상대를 찾아 하기도 어렵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이 책에 보면 유명한 사람들의 결혼에 관한 명언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와닿는 말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문장이었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려면 이혼을 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의 이혼이다"


하긴, 내가 사는 현지의 화교 - 중국 관습에 보면 결혼하기 전에 신부가 식장으로 출발할 때, 부채를 하나 떨어뜨리고 떠나는 의식이 있다. 결혼 전에 가졌던 나쁜 습관을 버리고 새로 태어난다는 그런 의미 정도로 읽힌다. 함 받는 걸 결혼식 당일날 하는 그들의 Tea ceremony를 보면, 새벽같이 신부를 데리러 처가로 향하는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모여 신랑과 그의 친구들이 들어오는 걸 막는 모습, 함께 사진을 찍고 식장으로 향하는 걸 보면서 어렵게 결혼한 만큼 그날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좋아 보였다. 그렇게 식장에 들어가면, 한국과는 다르게 신부도 신랑처럼 식장에 서서는 하객들을 맡으며 웃고 있다.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힘들지는 않을까 생각한 것도 잠시,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서로가 평등해진 부부의 모습인 것이 납득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을 때,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작가님의 글귀가 보였는데, 이 글이 참 좋아서 여기 남겨본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었음에도 나중에 깨달음처럼 사랑이 되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음에도 나중에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치게 하는 사랑도 있다.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우겨도 끝끝내 사랑이 되고 마는 사랑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눈을 뜬다. 사랑이 인생을 통해 가르치고, 인생이 사랑을 통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아주 많은 장면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깨달은 사랑도,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나 사랑이 아니었던 사랑도 있었다. 전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내가 싫어서 자책했고, 억울했다. 후자는 그게 사랑인 줄 알고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들의 경험을 아프게 하지 않았던 들 나는 사랑이 뭔지, 책 속에서 이 추상명사를 읽으며, 가늠이나 할 수 있었을까? 따라서 사랑이 인생을 통해 가르치고, 인생이 사랑을 통해 가르친다는 말에 참 많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 여정 한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삶의 벼랑 끝에 있으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외롭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스락거리게 드라이한 장면들도 있지만, 그 배경이 삭막한 뉴욕이지만, 그 자발적 디아스포라인 장의 발걸음을 따라갈 때 나는 또 다른 여행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내 지난 사랑들의 미로 속을, 그 이국적인 풍경 속을 나는 따로 또 같이, 걷고 있었다. 때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다.


더불어 글을 쓰고 싶었다. 나만의 장을 만들어 나만의 공간을 나만의 감정으로 걷고 싶어졌다.

소설 속 뉴욕이 아닌,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써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