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골동품 가게에서는 간혹 출처를 알 수 없으나 오래된, 값나가는 물건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오래된 화폐, 기념주화, 유령이 붙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멋진 빈티지 가구, 조명, 보석, 그리고 유명 작가의 초판 책들까지. 해외 나와 살아 거의 가본 적 없는 평화 시장 구제 샵에도 묵혀진 명품 옷들이 많을 것이다. 요는 필요에 의해 그것들을 찾을 여유가 있는 것인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에도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을까? 뒤 돌아보면 나의 잊힌 옷장 속에도 귀한 것들, 좋은 기억을 가진 것들이 꽤 많을 수 있는데...
일례로 올해 들어했던 대청소에서 나는 20년 전 면세점에서 구매했던 명품 브랜드 초커를 찾아서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현지 당근 마켓에 팔았다. 뿐인가.. 엄마 혹은 엄마 친구에게서 물려받은 명품 가방, 혹은 주변의 너그러운 이가 나누어준 티셔츠, 재킷, 원피스, 브랜드 운동화, 구두까지 내가 스스로 돈을 지불해 사는 옷은 거의 속옷, 양말, 정말 필요한 기본 템들밖에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할 때 5벌의 옷을 돌려 입고, 비싸고 좋은 것이지만 한 종류의 플랫 슈즈만 신고, 가방도 아주 가벼운 천가방만 들고 출근을 한다. 물론, 대면 미팅이나 외부 행사가 있으면 그때를 위한 풀 착장도 하나쯤은 구비하고 있다. 계절을 타지 않는 옷차림, 동남아는 1년 내내 여름이니까 한국에서라면 필요했을 계절별 착장이 필요하지 않아서, 나는 모아진 그 돈을 대부분 여행과 목적 있는 적금들에 투자할 수 있었다. 11년 전 이곳에 온 후 스트레스를 받으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과자나 초콜릿 같은 걸 엄청 사서 모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꽤 소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는 팍팍하고 내가 가진 경험들은 그것에 반비례하게 값지다. 과거의 젊음, 즉 경험의 백지상태에서 받은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지금 나이에 재생하려면 그 열 배의 비용이 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름 최대한 일상적이고 검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도록 삶의 시스템을 세팅해나가고 있다. 해외에서 산 내 인생의 1/3 가운데, 세 번째 나라에 정착한 뒤 5년은 지나서야 부끄럽게도 경제관념이 찾아왔고, 그제야 뿌리내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저축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립적인 월급이 들어온 것도 아주 오래전의 일은 아니니까..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 대비, 사람은 다 소비를 줄여가며 살게끔 되어는 있다. 어느 곳에서 얼마에 생필품을 구매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사치품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악순환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백화점이나 슈퍼에 갔을 때 느낀다. 많은 호객 상품들이 즐비하고, 여름 세일도 대대적 이건만, 많이 팔리는 낌새는 아니다. 모두가 어려워짐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외식 문화는 더운 나라의 특성상 아직 살아있지만, 가성비가 좋지 않거나 그 성격이 모호한 식당은 아무리 외관이 화려해도 오래 못 간다. 6개월 안에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면 가게 문 닫아야 하는 냉정한 현실은 한국이나 이 나라나 똑같다.
주말에 이런 생각이 든 시점을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어서 글을 남긴다. 6월 그리고 상반기는 눈이 아리도록 컴퓨터를 보며 일했다. 일하다가 숨차다는 느낌이 든 적도 여러 번이고 다행히 번아웃 오기 전에 공휴일 붙여 짧은 휴가도 갈 수 있었지만, 모든 소비 결정을 하기 전에 가성비를 엄청 따지기 시작한 것도 올해에 이르러 더욱 그러하다. 주말 요가를 함께하는 현지인 친구와 나는 한창 서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3월에 어느 유명 해외 뮤지션의 내한 공연 티켓을 리세일 사이트에서 찾고 있었다. 가격은 30만 원대 후반이었다. 우리 둘은 20년이 넘은 밴드 덕후들이라 공연에 대한 경험치와 안목이 높은 편인데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 가격이면 조금 더 보태서 안 가본 곳에 여행을 가는 게 나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자리에 앉아서 많은 것을 검색해서 우리가 떠난 곳은 몰디브였다. 충동적이라고 하기엔 멀 것 같지만 내가 사는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멀지 않았고, 각종 공홈과 딜을 찾은 결과로 4박 5일 동안 시세의 25%에 다녀올 수 있었다. 비행기 숙소 음식 다 합해서. 우리는 풀보드도 아닌 조식 포함만 했는데, 가만히 쉬고 있으니 배도 고프지 않아서 생각보다 음식 비용도 들지 않았으며, 호텔 측에서 준 2병의 샴페인도 다 못 마셔서 남은 술을 넣어 반신욕까지 하고 온 가성비 럭셔리 여행이었다.
우린 바다 위에 지은 리조트에서 물만 바라보며 편히 쉬다가 왔다. 핸드폰도 다 꺼놓고 회사 이메일을 한 번도 체크하지 않은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초록색으로 투명한 바다를 보자니 찍어온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그 기억으로 또 내년까지 버티지 싶은 생각이 든다. 경험은 그런 것이다. 경험은 바쁜 일상 때문에 속 좁아진 나의 인격을 조금은 더 인간에 가깝게 해 준다.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있는 분야는 진입 장벽이 낮지만 워낙 터프한 niche market이라서, 11년 차가 된 요즘은 엄청나게 내 마음 근육이 단단해져 있음을 느낀다. 감사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다. 감성적이 되는 건 일하는 데 있어서 극약이니까. 내 마지막 공식 연애는 2020년 초 코로나 직전이었던 것 같은데,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을 때 고객사가 컴플레인하는 전화를 받으면 길을 걷다가도 서러워서 엉엉 울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코로나를 거쳐 지금까지는 훨씬 더 한 말들도 많았었는데, 마음이 단단해져서 그런지, 일하다가 자기 성격 못 참는 이들을 그냥 불쌍하게 봐서 그런지, 별로 '더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생각보다 타인에게 혹은 자신들의 을에게 정말 말을 막하는 사람들은, 해외 살아도 많이 보는 편이고, 안타깝게도 그들 중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앞으로 나는 남은 하반기를 어떻게 내 마음을 지키고, 내 지갑을 지키며,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야 할까? 어젯밤 문득 이 화두가 시작되어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답은 심플했다. set up the intention as pure and straight forward. 삶의 태도를 내가 결정하면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가 대신 정의해 주지도, 책임져 주지도 않는다. 수없이 얽히고설킨 관계들 속의 이해관계는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진 빚을 서로 갚아가며 생기는 정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살 때의 나는 오지라퍼였다. 남의 눈치와 마음을 살피는 일에 익숙했고 그 결과 많은 상황에서 호구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마음이 드는 상대가 생겨서 그렇게 해주면 참 고마워한다. 그런 피드백은 따뜻한 마음의 경험으로 쌓인다. 내가 나에 대해서 쓰는 에너지를 제일 소중히 하고, 그다음은 선별적으로 해 나가면 된다. 대상은 내 일이 될 수도,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동료나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지만, 개개인이 마음을 쓰는 대상은 스스로 결정하고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관계를 이용해 나도 모르게 "너에게 내가 돈 쓰는 만큼 나를 제일로 생각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데, 그것만큼 지속적이지 않은 관계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으로 산 인간관계의 말로가 제일 처참하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결국 사람도 돈도 다 잃고 만다.
살면서 다닌 학교의 수만 7개, 학원은 훨씬 더 많을 것이고, 1년 이상 살아본 나라 4곳, 여행한 나라 28곳, 6개월 이상 일해본 직장은 9곳 정도 된다 (아르바이트는 제외다) 고 숫자로 표현할 수 있으니 나도 꽤나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 거라 추론해 볼 수 있다. 뿐인가. 내가 관람한 밴드 단독 공연은 지난 25년간 어림잡아 100개 가까이 되니까 분기별로 내 정신 건강에 제일 좋은 요법을 썼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찾은 내가 최초로 관람한 단독공연의 티켓은 나를 소름 돋게 했다. 그날 했던 수학 과외 선생님의 언니가 팬클럽 회원이었으나 일 때문에 참석지 못해 내가 대타로 가게 된, 장국영 공연의 홍콩 콘서트 1열. 내 인생의 행운이자 불행은 거기서부터였을 거다.
그 때의 종이티켓은 내 낡은 티켓북에 잘 보존되어있다. 내 요가 메이트는 장국영 팬인데 그녀에게 이걸 보여주니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남들이 쉽사리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너무 어릴 때 겪었기에 나는 그것이 주는 삶의 엄청난 파장을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미지의 세계와 에너지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다. 그 가운데를 관통하며 버텨준 척추 같은 힘은 바로 내 의지와 목표, 그리고 원칙이었다. 흔들려서 부서진 적도 많고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어젯밤 나를 설레게 한 하반기 intention은 "나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자"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은 내가 삶의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 혜안과 위로를 주었다. 교차로에 서 있을 때마다 혼란스러워서 잘못된 길을 가기도 했지만 뒤 돌아보면 가장 좋은 결정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것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 유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나에게는 더더욱 - 그리고 그것보다 더 어려웠던 건, 나라는 사람의 성격과 모자란 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듯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결핍 또한 공연으로 해소된 건, 내가 그만큼 안고 사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게 아닐까. 더 잘 살아보자고 글로써 남기는 나의 선언. 두서없어 보여도 글로 써보면 훨씬 더 명확해진다. 뜨거운 여름만큼 태워올라 보는 의지의 불꽃, 부디 건강 조절을 잘해서 흔들거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