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살면서 눈앞이 캄캄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몇 번의 전직 끝에 들어간 모처럼 '일 자체'가 맘에 든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사표를 내고 나서야, 이직을 준비하다가 믿었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십 대 후반의 어느 날, 아직 젊음을 간과한 채 잠시 머물러 쉬기보다 차악의 선택을 했을 때.
선물처럼 주어진 여러 인연들의 끈 가운데서, 하필이면 제일 나를 옥죄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것이 썩은 인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주머니에 단 돈 백 원이 없어서, 가진 물건들 중 소중한 것들을 팔았어야 했을 때.
숨이 턱에 차 오르도록 달렸지만 막다른 길이었음을 알았을 때.
다양한 아픔과 경험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고 하지만, 내 초년생활은 참 녹록지 않았었던 것 같다. 불구덩이 같았던 20대를 지나 30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일에만 매달렸을 때에도, 나는 힘들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감정적인 순간들이 오기 전에 앞만 보고 내달렸다. 마음 한편에서 누군가가 외치고 있었다.
'주저앉으면 끝이야. 도망쳐야 해'
애써 감정을 보지 않고 달려온 요즘, 특히 올해 들어 제일 크게 찾아온 건 건강의 악화였다. 몸도 마음도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고, 불면증이 심해져서 멜라토닌부터 수면유도제까지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나 있었으므로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꽤, 아주 많은 영화, 드라마, 책, 공연을 섭렵하면서 내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고 발산하려고 애썼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보며 펑펑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하지만 뭔가를 쓰려고 하면 자꾸 가라앉아서 수동적으로 티브이를 틀어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오늘 나는 오래전 - 20년 전- 에 자주 쓰던 이메일 주소에 접속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그 메일 박스 속에는 잊고 있었던 인연들과,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시절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잊힌 사람들, 분명히 꿈꿨지만 사라져 버린 미래들, 분명히 소중했지만 놔 버려야 했던 꿈들이 그 안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외부 환경에 의해서든 내 선택에 의해서든, 내가 만든 점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여기에 이르게 한 흔적도 있었는데, 그건 정확히 10년 전 날짜가 마지막이었다. 즉, 10년 동안 난 마음속 서랍에 그 소리들을 걸어 잠근 채, 내가 선택한 곳에서의 삶에 집중해 온 것이다. 그건 그대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불면의 근원은 여전히 그 10년의 소용돌이를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수많은 이사, 전학, 이직. 성장과정의 아픔과 많은 해외 경험. 그래서 생긴 많은 만남과 이별. 나는 그 시간을 견뎌내오며 회복 탄력성이라는 걸 배웠다. 나랑 가장 잘 놀아주는 법도 터득했다. 이제 내게 남은 삶의 과제는 오늘을 계기로 내게 결핍되었던 것들을, 잘 보내주는 일일 것이다. 10년 전 이메일 박스 속에서 나를 힘들게 한 원인들은 대부분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이제 내 마음가짐과 감정 표현일 것이다. 더 많이 나아가기 위해서, 더 많이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고, 쉬어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우선순위를 정하듯이, 내 인생에도 우선순위를 정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8월도 막바지다. 시간은 유한하고, 나란 존재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믿어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