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 나를 살렸다 3
나는 무언가에 몰두하면 몹시 신이 나서, 가끔 내 몸에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를 만큼 시간을 쓰곤 한다. 그렇게 달리는 말에서 내려와 돌아보면, 울었는 지도 모를 만큼 눈물 자국은 말라있고 지나온 길만 보인다.
1999년. 스스로의 고민 위에 주변 학생들의 텃세까지, 쉽지 않은 전학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다행히 주변 환경과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원 없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 공부까지 할 수 있던 건 천운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수업, 학원, 도서관 자습으로 빡빡했는데 그 시기 내가 듣던 음악들은 락밴드 중에서도 헤비메탈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끊임이 없이 귓전을 때리는 기타 리프와, 신시사이저와, 드럼의 비트. 가끔 콘택트렌즈를 끼고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고 홍대 앞에 있는 클럽에 갔다. 춤을 추는 곳이 아닌 기성 음악 카피를 하는 밴드들이 있는 곳 말이다. 그렇게 나를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 뛰며 헤드 뱅잉을 하고 나면 내가 겪는 모든 감정들이 진공 포장이 돼서 의식 너머로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찰나의 달콤함이 현실의 모든 고민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였을 만큼.
.. 눈에 보이지 않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일인 줄 몰랐다. 제도화된 공부 방식과는 다른 내 나름의 방법으로 공부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공부하는 것이다. 너무 재미있었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 우리 모두 아주 오래 살게 되었다. 공부하는 것 말고 행복한 삶을 경영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래서 공부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억지로 하는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 '창조적 시선' 프롤로그 중에서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고민은 끝날 줄 알았고, 마냥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그 시절의 우리는 경주마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였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첫 세 달 정도를 맹렬히,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란 미명 아래 과방과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나는 도서관으로 슬쩍 눈을 돌려 일본 문학 작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상상 속 세상에서 행복해했다. 마침 그 학기에 '창작과 소설 쓰기의 이해'라는 수업도 듣고 있어서, 내 첫 중편을 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판 앞에서 9시간씩을 작업하면서도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의 나는, 수많은 새로운 만남들 속에 소모가 된 것 같았고, 마음이 설레는 사람이 있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우상이었던 그 선배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녀와 헤어지고 나랑 데이트했던 시기도 있기는 했는데, 동시에 신입생 중 다른 누구도 만나고 있던 걸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나는 상처를 받는 동시에 연애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했다. 자라면서도 겪은 애정과 관심의 결핍을 어떤 외부의 대상을 통해서 채운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인 것을 지금은 안다. 그것은 모래로 쌓은 성과도 같아서 맹목적으로 따르던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리면, 그 대상과 동일시하던 나 자신도 사라진다.
정신분석에서 프로이트의 동일시(identification) 이론은 타인 혹은 이상적 대상의 특성을 자신의 자아에 통합하는 것으로, 그 대상을 자아의 일부처럼 내면화하기에 그 대상이 사라지면 자아 구조 일부도 흔들릴 수가 있다. 특히 대상과 자아를 강하게 동일시하면 그 대상이 사라질 때 ‘나 자신 일부가 사라지는 느낌’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것이 병리적이 되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이 흔들리고 그 대상에 의존적이 되며, 삶의 의미를 자기 자신의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대상에게서 얻게 될 수도 있다.
결국 그 찬란한 스무 살 시절에 나는 내 마음의 '구멍'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바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두렵고 어색해서 자꾸 외부 활동에 눈을 돌렸다. 1학기가 지나고 있을 때 즈음 온라인 일본 음악 동호회에 가입해 덕메 (덕질 메이트) 들을 만나서는, 본격적으로 꿈에 그렸던 덕후의 생활, 즉 '덕질' (推し活; '오시카츠'가 맞는 단어인 듯하다. 구글에 따르면 아이돌, 배우,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포츠 선수 등,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는 활동 전반을 일컫는다. 라이브 공연 참가나 굿즈 수집, SNS에서의 활동, 성지 순례 등 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생활에 색채와 활력을 가져오는 문화로서 20대~50대 여성의 약 5명에 1명이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을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일본 음악 덕후가 되는 것에 나는 큰 위화감은 없었다. 대학교에 일본 문학이랑 언어를 공부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꽤 일본 문화 어딘가에 꽂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래 덕후라는 말의 어원은 오타쿠(お宅; おたく) 즉, 1980년대 '집 안'에서 덕질하며 서브컬처를 애호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였다가, 지금은 영화, 아이돌, 만화, 철도 등 다양한 특정 분야에 깊은 애정과 지식을 가지며 거기에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승격(?) 되었다고 한다.
오타쿠보다 더 한 말은 사실 옷카케 (追っかけ;おっかけ)라는 단어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 공연을 보며 열도를 유랑할 때 만났던 덕메들이 알려준 말로, 특정 대상의 모든 공식 일정을 쫓아다니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며, 투어가 시작되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팬들을 일컫는다 했다. 일본에서 그들과 나름 친구가 되어 지냈을 때 알았지만, 그들은 대상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생팬과는 조금 달랐다 (약간 그 경계선에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한국의 돌판에서 (아이돌 업계) 홈마(홈페이지 마스터. 일명 대포 카메라로 아이돌 대상들의 예쁜 사진을 찍어 비공식 굿즈 등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들이 그 애정 어린 퀄리티의 사진들로 대상 연예인들의 지지와 인정을 받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내가 나의 삶 대부분을 바쳐 노력을 쏟고, 나와 동일시하던 나의 최애(最愛; さいあい. 역시나 일본어 표현을 그대로 한글로 가져온 것)가 '어이, 서율, 이번 공연에도 와 줬네?' 라고 꼭 찝어 내 존재를 알아준다면. 그건 그대로 일평생 간직할 만한 감동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