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인공호흡기

덕질이 나를 살렸다 2

by 장서율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원작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일본어판 연극을 보러 모처럼 쉬는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내에 나갔다. 혼자서 감상을 잘하고 있는데, 앞에 앉은 여학생이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유니콘으로 분한 무용수들의 무대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옆에 부모님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20분 동안 그걸 들고 있었다. 당연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최대한 예민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인터미션 때 상주 직원에게 항의했다 - 사실 연극 관람 동안에 그 직원도 자신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 그러고 나서 옆에 서 있던 일본인 모녀가 나에게 '혹시 너도 같은 이야기를 했니? 나도 항의하려고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뾰로통해 있던 나는 그래도 내가 많이 예민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내면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문제에 넋을 빼앗기지 않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어야만 한다. 문제 속에 빠져들어 있는 동안에는 어떤 해결책도 존재할 수 없다. 문제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고 화를 내서는 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맨 먼저 다루어야 할 문제는 자신의 반응이다. 상황이 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기 전에는 외부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지 않다. 사태를 충분히 들여다보면 진정한 문제는, 모든 일과 사사건건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바로 당신의 내부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의 그 부분을 처리하는 것이다...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


자기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예민하고 소심한 아이의 겉모습이 그러했을 뿐. 학창 시절의 나는 집에서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죽도록 싫었다. 내가 원인이 되어 부모님이 싸운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고, 되도록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전학을 갔던 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운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때 엄마는 나에게 왜 그러니, 하고 묻는 게 아니라, 아버지 속상하시게 한다고 나를 나무랐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에게 내 속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괜찮은 모습만 보이려고,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에게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진짜 괜찮은 것 같이 보였고, 내 감정이 뭐가 뭔지 모를 정도가 되어갔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되어, 나는 내가 듣는 일본어로 된 음악의 가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독학을 시작했다. 문법 학원을 방학 동안 한 달 다니고, 노래 가사에 나오는 단어들 위주로 외우다가 곧 문장을 외워버렸다. 대입 공부를 해야 하는데 수학 시간에 사전을 무릎 위에 두고 단어 찾기에 여념이 없는 나를 보고, 수학 선생님에게 핀잔을 자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수업과 야자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비슷한 음악을 듣는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주말에는 일본 음악 청음실과 불법 경로로 음반을 파는 가게들을 찾아, 이른바 '성지 순례'를 했다. 그 시절에 일본판 잡지와 음반을 사려면 비쌌으므로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서 인화한 사진을 몇 장씩 사서는 다이어리에 꾸미고는 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그 해의 겨울 무렵이었는데 월 30만 원 정도를 벌어서는 모두 CD 음반을 사는 데 써 버리고는 했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 앨범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겪는 감정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에게 모범생이 되라고만 하는데,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조차도 내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모르는데- 그 음악만이 내 안에 억눌려있던 '자유로운 영혼'에게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었달까.


나는 그러다가 외고로 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야자 시간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노래 가사를 외우다가, 공부라도 더 하지 않으면 진짜 대학에 못 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서였다. 표면적으로는 좋아하는 외국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것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하던 말이 많은 주변 사람들이 속 시끄러워서였다. 일반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에게 자꾸 연애편지 대필 같은 걸 부탁하는 게 싫어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걸 거절 못하는 나 자신도 싫었다.) 마지막으로는 국어, 수학, 윤리 시간 통틀어 학생들을 얕잡아 보고 욕을 하는 선생들이 개탄스러워서였다. 나는 청소시간에 교무실에 가서 그들의 컵을 씻고 책상을 청소하는 일이 가장 곤욕스러웠다. 교실이나 화장실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라서 그렇다고 쳐도, 공부하는 시간도 아까운 우리에게 왜 자신들 공간의 청소를 강요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혼자서 걸상에다 화풀이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혀를 찼다. 그때 다시 한번 알았다. 나, 참 예민하구나. 모난 정이 돌 맞을 수도 있겠구나. 스스로 인정하는 건 괜찮아도 남들이 그런 이유로 나를 비난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면학 환경이 좋은 곳으로 가고자 했다. 학생 때야 공부 열심히 하면 아무도 토 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은 나의 결심을 지지해 주셨고, 외국어로 전학 시험을 보고 나는 2학년 초부터 외고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아무와도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친하다고 여러 부탁을 하는 것에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친한 사이라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도 싫었다. 점심 도시락은 혼자 먹고, 교내 방송으로 가끔 내가 좋아하는 일본인 밴드 음악이 나오면, 팔짱을 끼고 책상에 기대서 자는 것 같이 보였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선율 하나하나가 나를 마음 둘 곳 없는 나날 가운데 숨을 쉬게 해 주었다. 간헐적인 호흡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침잠하기를 여러 번. 기억해 보면 책상 위에서 쪽잠 자던 그 시절에 나는 자주 가위에 눌리곤 했다. 꿈속에서는 나에게 등을 돌린 엄마와, 잘해야만 한다는 입시 스트레스가 나를 짓눌렀다. 그 와중에도 내 마음을 두드려주는 친구를 만난 건 참 행운이었다. 우리들은 음악이라는 범주 내에서 허물없이 어울렸다. 서로에게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더빙해서 나눠주고, 큰 어울림 없어도 마음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직, 같은 음악을 듣는 동시대의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나는 위의 발췌 글에서처럼 나의 상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랐고, 그래서 학생이면서도 술과 담배에 기댔으며, 수면 사이클도 엉망이었다. 건강한 십대였어서 그런가, 어찌 보면 그렇게 음악으로 도망치면서 입시 공부를 했어도 결과가 좋았던 건 참 다행이었다. 재수라도 했으면 더 망가져서, 지금의 내가 어디에 있을까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내가 그렇게 탐닉했던 음악의 나라, 일본어 문학과 언어를 전공해 보기로 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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