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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Jan 27. 2020

<미안해요 리키> 리키에게 필요한 건 미안함이 아니다

켄 로치 감독이 그려낸 노동의 미래

태풍이 몰아치는 날, 하필 짜장면이 미칠 듯 먹고 싶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가격과 거리 등을 비교해 짜장면을 어렵지 않게 시킬 것이다.


과거에는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동네 중식집에 "지금 배달 되나요?"라고 눈치를 보며 물어본 뒤 비에 홀딱 젖은 배달원의 눈총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짜장면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중식집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앱을 통하면, 배달원과 마주치지 않아도 <벨 누르고 문앞에 놔두고 가세요> 라는 주문메모만 남기면, 죄책감 없이 집으로 짜장면을 배달시킬 수 있다. 고객의 수요에 즉각 반응하는 ‘온디맨드(On demand) 경제’가 구축되면서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대, 정작 이 경제를 지탱하는 노동자의 존재는 잊혀지곤 한다. 제21호 태풍 제비가 일본을 강타했던 2018년 4월, 트위터에선 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는 태풍으로 인한 강한 바람에 오토바이가 밀리고 쓰러져 곤혹스러워 하는 피자 배달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트위터 캡쳐

(https://twitter.com/pur305/status/1036845605815894016)


소비자의 편익 증대라는 기술의 눈부신 성과는, 태풍을 뚫고 온몸으로 강풍에 맞서는 위험을 감수한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 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가시화된 순간이다. 트위터에 달린 댓글 중 상당수는 업주를 탓하거나 주문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폭염이나 폭설, 태풍 속에서 도로 위를 달리는 배달 노동자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온디맨드 경제’ 속 노동자의 존재를 전면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리키의 가정을 통해서 플랫폼 노동자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 리키는 물품을 고객의 집앞으로 배달하는 택배 노동자이고, 그의 부인인 애비는 치매 환자나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보살피는 요양보호사로 돌봄 노동자다. 두 사람은 쉴틈 없는 초과 노동과 고된 업무에 시달리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관계는 점점 더 황폐화되고 만다.  


이는 ‘온디맨드 경제’에 편입된 노동자들의 특징과 무관치 않다. 이들은 전통적 고용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리키와 애비는 특정 회사에 고용된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된 사업자다. 즉 플랫폼 사업자는 리키나 애비의 고용주가 아니다. 물품이든 서비스든 소비자와의 거래를 돕는 중개인일뿐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노동자의 권리나 보호 또한 받을 수 없다.


리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리키는 택배기사로 일하기 위해 배송차를 손수 장만한다. 유류비나 보험 등 차량유지비도 개인 사업자인 리키의 몫이다. 회사가 제공해주는 건 물품을 전산화하기 위한 PDA 단말기 뿐이다. 이 기계도 고장이나거나 훼손되면 택배기사가 물어내야 한다. 개인 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을 땐 대체기사를 구해야 하며 그 비용도 물론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리키는 회사와 계약한 사업자로서 건당 수수료를 제공받는다. 시간당 임금을 받는 게 아니므로 물품 배송을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누락되고, 최저임금 개념 또한 무력화된다. 고객의 물품을 분류하고 스캔하고 차에 싣는 과정은 모두 배송을 위해 필요한 노동이지만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애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리키의 배송차를 위해 본인의 차를 팔게 된 애비는 대중교통으로 고객의 집을 오가야 한다. 이동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으며 비용도 자비 부담이다. 하루는 치매 환자가 온몸에 똥칠을 해 그를 씻기느라 초과노동을 해야 했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지급되지 않았다. 리키처럼 건당 수수료를 받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의 특성상 돌출적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사업자는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고객과 노동자에게 부담과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애비가 치매 환자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다


리키 애비는 노동자의 권리는 박탈당한 채 각종 비용은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말 플랫폼 사업자가 말한 것처럼 개인 사업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들의 노동은 자율성과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시간이나 노동형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개인 사업자와는 달리 종속적 형태로 일을 하는 탓이다.


리키의 PDA 단말기는 리키가 차 안에서 벗어난 시간이 2분만 넘어도 '삑삑'하고 울어댄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해 소변을 페트병에 보고, 샌드위치로 때우는 식사도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다. 배송노선도 회사의 관리자에 의해 임의로 정해지므로 택배기사들이 선택할 수 없다. 리키의 동료는 관리자와의 다툼으로 인해 자신의 노선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빼앗기고 만다. 애비의 경우, 모처럼 한 테이블에 모인 가족과의 식사를 뒤로한 채 고객의 호출을 받고 그의 집(일터)으로 향해야 했다.


리키 가족의 화목한 시간은 애비에게 전화가 오며 깨지고 만다


이 영화는 리키의 이야기면서 리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자인듯 노동자아닌 노동자같은 '리키들'은 개인 사업자라는 자본의 기만 아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단순히 플랫폼에 기반해 노동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의 최신판이다.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놓인 '디지털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기존의 보호체계에서 벗어난 채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감독은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한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줬듯 <미안해요 리키>에서도 노동 취약계층의 존엄이 붕괴되는 과정을 섬세히 그려낸다.


리키는 택배 물품을 도난 당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도들에게 무차별적 폭행도 당한다. 하지만 자본의 각종 위험요소, 불확실성 떠넘기기로 인해 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모든 비용은 그에게 전가된다. 관리자가 병원에서 의사와의 면담을 기다리는 리키에게 전화를 건 뒤 꺼낸 첫 이야기는 물품 도난과 훼손에 대한 보상비용에 관한 것이었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여권 두개와 PDA 단말기 값을 물어내라고 말이다. 이는 리키가 하루 14시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일당의 최대치를 훨씬 넘어서는 금액이었다. 숫자와 실적, 경쟁과 성과 앞에 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히 무너져버린다.


리키의 딸이 리키를 대신해 부재 메모를 쓰고 있다



영화의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는 수취인이 부재중일 때 택배기사가 남기는 쪽지의 문구다. 여기서 ‘we’는 택배 회사이고 ‘you’는 소비자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노동자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경제시스템에 다수의 노동자가 편입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법과 사회안전망으론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의 공백 속에서 비인간적 환경에 내몰린 채 존엄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우리 보지 못하고 있다. 사회 속 ‘리키들’에게 필요한 것은 “Sorry”가 아닌 이들을 보호할 실질적 수단과 방법이 아닐까. 리키에게 "미안해요"란 말은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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