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집

어린 시절의 묵직한 기억 조각 (1)

by 꼬왑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2학년 2학기가 시작할 때 인생 첫 전학을 했는데, 2년 뒤 또 이사를 하게 되어 전학을 한번 더 해야 하는 상황이 왔었다. 하지만 한창 학교에서 친한 친구 무리가 생겨날 즈음이기도 했고, 자동차로 15분 내외의 멀지 않은 거리로의 이사라, 나도 중학생 언니의 결정을 흉내 내서 전학하지 않고 원거리 통학을 하며 버티기로 결심했다. 돌아보면 그때 버티기를 잘한 것이, 훗날 중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 또 전학을 해야 해서, 하마터면 어렸을 때의 추억을 공유할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을 뻔했다.


자동차로는 15분 내외였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이용해 편도 30분~1시간 정도를 들여 통학해야 했다. 학교에 갈 때는 잠실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삼성역까지 가서 글래스타워 앞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만 학교 앞에 내릴 수 있었는데, 출근/등교로 붐비는 아침 시간대에는 초등학생의 몸으로 빽빽한 만원 버스에서 인파를 뚫고 내리는 문까지 가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오빠들의 등허리에 코를 박고 신선한 땀내음을 맡으며 그들이 들고 탄 농구공에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며 휘문고 정류장에서 보도레일처럼 자동으로 하차하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이전 정류장인 삼성역으로 버스 한정거장을 걸어갔고,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1교시가 시작됐거나 시작할 시간이 다 됐었다. 지금이라면 담임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씀드렸을 텐데, 당시 나는 어휘력과 표현력이 부족해 "멀리 살아서요"라는 말만 반복해 선생님을 의아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지각이 주는 불편한 심리에 무뎌져 지각왕으로 반평생을 넘게 살아왔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3~4년 간 대부분의 날은 언니를 따라 나와 함께 등교했지만, 언니는 중학생이라 등교시간이 나와 달리 일러서 먼저 가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는 같이 가기로 했는지 언니도 집에 있었다.


7시였나, 8시였나. 한창 등교 준비 중인 매우 이른 시간이었는데 누가 벨을 눌렀다. 당시 우리집은 빌라였는데 아래층에는 둘째이모, 위층에는 넷째이모가 살고 있어서 셋째인 우리 엄마는 위아래층을 수시로 넘나들며 지냈기에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법원에서 나온 사람들이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무례함으로 미루어보아 법원 직원들이라기 보단 불법추심업체가 아니었나 싶다. 그땐 아빠와 따로 살 때라 엄마랑 언니랑 나 셋이서 여자들만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떼로 들이닥쳐 집안 집기 여기저기에 거침없이 빨간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언니랑 나는 너무 무서워서 내 방으로 같이 숨어 들어갔고, 엄마 또한 너무 놀라고 무서웠지만 나와 언니를 안심시키고 보호해야 하기에 용기 있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중에 가장 대빵인 아저씨를 대응하고 있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내 눈앞에서 TV와 장식장 등 돈이 될만한 기물에 포스트잇처럼 된 새빨간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엄마는 그 와중에 언니와 나에게 내 방에 있는 피아노 앞을 막고 서있으라고 지령을 주었다. 하지만 건장한 아저씨들이 꽤 여러 명이었기에 그들 중 한 명이 나와 언니를 가볍게 제치고 내 피아노에도 빨간 딱지를 붙이는 데 성공했다.


대빵인 아저씨는 "OOO씨(엄마 친구) 채무 안 갚으셨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난 지금도 그 채무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엄마는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아마도 견디다 못해) 취한 액션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이런 일을 겪게 된 것과, 이런 충격을 우리 자매가 마주하게 된 것에 대해 분개하면서 대빵 아저씨에게 일단 나가라고 하다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자 싱크대 안쪽 문에서 가장 큰 칼을 꺼내 들고 위에서 아래로 할복하는 자세를 취하며 아저씨들을 협박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여기서 당장 죽겠다고.




건장한 아저씨들이 느닷없이 신발을 신고 몰려와서는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며 압류 딱지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 엄마가 자해하려는 모습을 본 초등학생은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 운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었지만 극도의 공포심에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나와 다섯 살 터울이라 성숙했던 언니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데리고 나와 일단 등교를 했는데, 학교에 가도 울음이 멈추질 않았고 나는 그날 내내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루종일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걱정+공포+우울+낙심이 집약된 감정이 밀려왔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빨간 딱지가 뭔지도 모르면서 눈치로 압류가 무엇인지 간파하고는 '이제 우리집은 길에 나앉는 일만 남았구나' 싶었고,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엄마가 너무 슬퍼서 집에서 죽어 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들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왜 우냐고 하루종일 물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에는 입이 열려서 선생님께는 대충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요"라고 한두 마디 둘러댔던 듯하고,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할까 고민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난 이 세상에서 법원 관련한 사람들이 제일 싫어"라고만 말했다. 실은 그때까지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변호사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날부로 꿈도 바꾸기로 다짐했다. 법원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이고 정말 싫다면서.


그날 집에 왔는데 엄마가 다행히 살아있었다. 수화기를 붙들고 격앙된 목소리로 여기저기 통화를 하고 계셨고, "다른 건 몰라도 내 딸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그 연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팩트는 지금도 자세히 모르지만, 아마도 엄마가 보증을 섰던 것 같다.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어른들의 대화였지만 나는 방에서 내 할 일을 하는 척하면서 엿들었다. 그러면서 통쾌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지금 우리 엄마가 정신을 차려서 본인의 황망한 감정보다는 나와 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구나, 세상을 하직하려고 하시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엄마의 저 복수가 성공해야 할 텐데.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간 시간이 흘러 나는 밝은 기운도 되찾고, 학교의 친한 친구들과 크루를 형성해 각자와 교환일기를 주고받으며 끈끈한 우정을 다지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한 동네에서 크고 자라 서로의 집을 편히 오고 갔는데, 우리집은 구가 달라서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올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나이의 소녀들은 똘똘하다. 여름 방학이 되자 내 친구들이 자기들만 모여 노는 게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보고 싶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 친구들이 우리집 주소와 대중교통 타는 법을 외워서 우리집에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초인종 공포증이 생겨 누가 갑자기 벨을 누르면 숨을 죽이고 인기척을 없애곤 했다. 내 인생에서 "누구세요?"란 말과 상황이 사라지게 된 거다. 초인종도 무섭고,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모두 채무독촉처럼 여겨졌다. 엄마도 그때부터 '사람 없는 척' 마스터가 되셨던 거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누구든 문전박대'하는 만행에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띵동.


벨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자,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자기들이 왔다고 문 밖에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날 만나러 이렇게 먼 길을 와 준 친구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받고 미치도록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집에서 아직 제거하지 못한 빨간 딱지가 들키는 것도 창피하고,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복잡한 감정이 요동쳐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사람 없는 척'을 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친구들은 수십 분 전 전화 통화를 통해 분명 내가 집에 있는 걸 알고 우리집에 서프라이즈로 온 건데, 집이 너무 조용하니 이상하게 여기며 우유투입구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몸을 엎드려 우리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친구들이 현관문에 멀찌감치 떨어져 멀뚱히 서있는 내 다리를 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날도, 그 이후에도 일관되게 "아니? 나 그때 집에 없었어."라며 거짓말이 낳은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구들에게 당시의 내 잘못된 판단으로 더운 여름날 헛걸음을 하고 되돌아가게 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지 못했다. 당시 내 친구들은 "이상한데, 분명히 니 다리를 봤는데 왜 없었다고 해? 그럼 내가 본 다리는 뭐야? 너네 집에 귀신 있어?"라고 하면서도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주었고, 그때보다 더 멀어진 나의 중학교 졸업식에도, 성인이 된 후 내 결혼식에도 찾아와 주었다.




그때 왜 나는 친구들에게 솔직히 말하지 못했을까. 왜 빨간 딱지가 붙은 집보다 귀신이 사는 집에 사는 아이가 되길 선택했을까. 이 소중한 친구들을 문전박대해 겨우 쌓은 우정을 잃어버린다는 게 더 아찔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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