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안젤로에서 살아남기
끔찍하게 맛없는 밥. 온통 고기 뿐인 식단. 드글드글한 한국인들. 내가 염증을 느낀 것들은 죄다 평소에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밥 못 먹는다는 소리는 못 들었고, 어딜 던져놔도 너는 잘 살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다 지나간 말들에 불과하다는 걸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나는 임플라논의 후유증으로 끙끙 앓았다. 거진 한 달 동안 하혈했고, 매일 새벽마다 속옷을 빨아야 했다. 그래도 다 괜찮았다. 수업이 좀 힘들었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고 교수들과도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다. 카운슬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이해되지 않는 강의는 없었다. 솔직히 한국말로 듣는 것보다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내가 지쳤던 것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안된다는 강박이었다. 언제나 완벽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낮잠이라도 거하게 자는 날엔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얻어가야 한다. 하루 하루, 일 분 일 초를 아깝게 보내면 안되는데. 유학 생활을 하면서 그런 일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다들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만 가득했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웃음들. 태양 아래에서 오렌지 과육이 터지는 것처럼 상큼한 하루를 보낼 것만 같은 사람들. 청춘을 어떻게든 즐기는 제각기의 모양들. 그래, 나도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버티기 위하여 살아가는 삶일 줄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난 버티는 걸 잘 한다. 그러니 6개월 짜리 교환학생이었으면 적당히 아쉬움만 남기고 떠났을 텐데, 하필이면 나는 여기서 1년을 있겠다고 덜컥 말해버린 게 잘못이었다. 1년이라니. 나는 11월, 12월이 다가올 수록 바싹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곳의 겨울이 생각보다 추운 것도 있었지만, 도무지 이 겨울을 혼자 보낼 자신이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기 귀국을 알아봤다. 그리고 다시 접었다. 친구들이 아쉽다거나 겨우 얻은 기회를 발로 뻥 걷어차버리는 게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힘들어하고 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를 찾아야 했으므로 리스트를 만들어봤다. 나는 왜 힘든가?
1. 영어가 힘들다
-> 공부하면 된다. 끝.
2. 사람들이 전부 외향적인데, 나는 내향적이라 적응이 어렵다. 파티 같은 것은 가고 싶지 않다.
-> 그냥 그렇게 산다. 내향적인 다른 친구를 찾아본다. 끝.
3.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걷어 찬 기분이라 슬프다.
-> 지금 슬퍼해 봤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끝.
정말 간편하게 해결되는 문제들이라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지만 그 때 내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명언이나 잠언들이 아니었다. 오로지 명료한, 그래서 당장 행동할 수 있을 행동 강령이었다. 나는 나만의 강령을 세웠다. 내가 이제 다루지 못할 모든 문제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 울면서 잠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미국의 겨울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을 때 갖고 있던 예금을 전부 털었다. 500만원 가량이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 돈이 아까워서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백 만원으로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거면 싼 값이다 생각하려고 했다. 미국이 싫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두려운 마음을 전부 유럽에 버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왜 미국 여행이 아니라 유럽 여행을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이라는 얼버무림만 남겼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건, 어느 곳에 머무르건 언제나 어디로 당장 도망가고 싶은 사람이니까, 도망갈 수 있을 때까지 이 지구에서 계속 도망칠 거야. 도망치고 나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지면 언제든 돌아올 거야. 돌아온 다음에도 도망치고 싶어지면 계속 돌아올 거고. 그게 내 생존 전략이야.
11월부터 12월은, 오로지 유럽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단지 그것만 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나에 대해 집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거? 내가 정말로 살고 싶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은 거. 돈을 오백 만원씩 쓰고,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휙 떠나 무시과 차별을 감내하고서도 커피 한 잔이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거. 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미친듯이 흔들리던 12월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 흔들려 봤다. 충분히 힘들었고 충분히 울었다. 그러니 다시 그 끔찍한 살로 소돔의 국가로 진입할 때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강박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다시 뛸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