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여름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여름을 좋아하게 돼버렸다. 피동의 의미가 적확할 듯하다. 왜냐면 ‘여름을 좋아해야지’라고 마음먹은 적이 없는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는데 정반대의 상대에게 마음이 가다니. 마치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운 것 같은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미 호감이 생겨버린 걸 되돌릴 수는 없다. 이 계절을 떠올리면 거미줄처럼 연관 검색어가 펼쳐진다. 해 질 녘을 닮은 능소화, 푸른 바다와 모래사장, 하얀 거품을 가득 밴 생맥주, <기쿠지로의 여름> 주제곡 <Summer>, 보고 있으면 홀라당 옷을 벗고 싶은 <콜미 바이 유어 네임> 등등. 푹푹 나리는 더위마저도 여름의 개성이라고 생각되는 걸 보니 여름이라는 거미줄에 단단히 붙잡힌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여름은 추억의 계절이다. 여름날의 추억은 뜨거운 태양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시간을 끈적하게 살아간다. 더위를 머금었던 옛 노래들이 유독 지금에서도 자주 리믹스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학창 시절의 추억들도 겨울보다는 여름 때의 이미지들이 더 선명하다. 그래서일까. 여름을 싫어하면서도 여름 방학을 기다렸던, 1학기 종강날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히죽 웃고 있던, 그 모순의 기억들이 여전히 만질 수 있는 찬란한 형태로써 남아 있다. 여름을 향한 사랑의 씨앗은 이미 그때부터 심어졌던 걸지도.
곱씹어 보면 여름에게 본격적으로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건 작년이다. 지난해에 나는 청춘으로서 꼭 해보아야 할 버킷리스트들을 잔뜩 그러모았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먹던 파인애플 통조림처럼 무엇이든 결국엔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중 하나가 국토대장정이었다. 대학생 때 못해봤던 걸 제일 젊은 30대 시절에 꼭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도전을 혼자 수행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나는 대외적으로 보이는 외향적 성격과 달리 내향적인 면모가 꽤 강해 혼자서 밖을 잘 못 돌아다닌다. 회사에서 보내준 서울에서의 2박 3일의 연수 과정에서 맛집들을 다 내팽개치고 혼자서 적적히 교촌 치킨 레드 허니 반반을 배달시켜 먹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동료들을 모았다. 함께 걷고 함께 보고 함께 얘기 나눌 동료들을.
그들은 독서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무용한 것들에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걷는 걸 좋아했다. 그들과 8월의 끝자락에 거제도의 테두리를 걸었다. 금요일 저녁에 거제도로 넘어가서 하루를 묵고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걸었다. 하필 난도가 상이었던 코스가 껴있었던지라 산행을 하기도 했다. 오르막을 오르며 “헥헥” 거리면서도 잎사귀들 사이에 빛나는 볕뉘를 카메라 렌즈에 담고 새소리를 듣고 그렇게 걸었다. 그러다 바다가 나오면, 바다 내음을 실은 바람이 불어오면 금세 기분이 상쾌해져서 또 한참을 힘내서 걸었다. 많은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꽃을 발견할 때마다 그 이름을 불러 주었고, 한 명이 틀어놓은 노래를 다 같이 따라 불렀다. 목적지는 거제 매미성 앞 해변이었다. 우리는 여정의 마지막을, 여름의 마지막을 그곳 바다에 뛰어드는 걸로 장식하기로 했다.
대충 지은 것 같으면서도 정교한 희멀건 매미성이 나왔다. 걸은지 장장 10시간 만이었다. 어라, 근데 아무도 수영을 하는 사람이 없네. 눈을 씻고 찾아보니 딱 한 무리가 있었다. 서양인들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눈으로만 바다를 구경했다. 8월 끝자락이라서 그랬는지 혹은 해수욕장이 아닌 바다여서 그랬는지, 아무튼 수영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도 여기에서 여름을 마무리하겠다고 거창하게 다짐한 것이 있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매미성 앞의 바글거리는 인파를 피해 조금 옆의 몽돌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핸드폰 거치대로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고 하나, 둘, 셋! 외치고 푸른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제 냉수의 차가움에 반해 “캬~”라는 탄성만 나오면 되는데. 그러면 여름의 갈무리가 지어지는 것인데. 그런데… 물이 너무 미지근했다. ‘땀에 뛰어든 것 같다’랄까. 지구 온난화 생각부터 났다. 다들 어이가 없어서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미지근한 바다에서도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열심히 수영했다. 배영을 하다가 파도가 세게 덮치는 바람에 소금물을 잔뜩 먹기도 했다. 그때 그 미지근한 바다 위에서 평화로운 소음 속에서 내가 읽었던 책 속의 한 문장이 기억나고 있었다. 우리는 벌써 이 순간이 그리울 그런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맞아, 나는 분명 이 순간을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될 거야. 나의 안목은 정확했다. 지금껏 그 여름의 발자국들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그들과는 지금도 개별적으로 만나고 있다. 아마, 이제는 그때처럼 모두가 동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간관계는 참 복잡하므로 그런 결말도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해 우리의 여름의 추억이 퇴색되는 건 아니니까. 그 순간들이 자양분이 되어 나의 여름은 싹이 트기 시작했으니까. 현재의 여름도 그리워지게 될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더위를 밴 밤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저녁, 얼린 잔에 차갑게 나오는 생맥주의 첫 모금, 해운대 야외상영회에서 부채질하며 보는 여름 향기 가득한 영화들.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나고 있는 여름날의 좋은 사람들. 아, 나는 지금의 무더운 이 계절을 사랑하고 있구나. 여름 꽃이 피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