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단어는 수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살면서 하릴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플랭크를 하곤 하는데 2분 30초 씩이나 되는 시간을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버텨내기가 무척 괴롭다. 타이머를 맞춰 놓고 째깍째깍 0초가 되기까지 기다릴 뿐이다. 팔이 저려오고 엉덩이는 내려갔다가 아차차 다시 올라가기 바쁘다. 그런데 왜 타이머를 맞춰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똑같은 시간이지만 직접 세면 안될까. 타이머는 그대로 맞춰 놓고 마음속에 알람 시계를 하나 더 두어 1초, 2초, 직접 세면서 버텨 보았다. 기다리지 않고 한발 두발 직접 달려 나가는 느낌이랄까, 전에 비해 초침 속도가 더 빠르게 회전하는 듯하다.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분명 까마득하여 지치기 십상인데 왜 나는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미래에서 온 치아키라는 소년과 헤어지고 풀이 죽어있는 소녀 마코토에게 이모가 이런 말을 건넨다. 상대방이 약속에 늦으면 뛰어서 마중 가는 게 너라고. 마코토는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시간을 거슬러 한번 더 만나러 간다, 기다리고만 있지 않기 위해. 상대방이 늦으면 먼저 뛰어가서 마중 나갈 수 있는 사람. 나 또한 뛰어가는 사람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여행을 가자고 먼저 나서는 편이었다. 내심 누군가가 얘기를 꺼내 주기를 기다렸지만, 직접 나서지 않으면 푸른 바다와 펜션에서 굽는 노릿한 고기를 맛보지 못할 것 같았기에,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뛰어 나가는 쪽이었다. 심장이 콩닥거리는 연애에 있어서도 주저 없이 뛰어 나가곤 했다.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다가와주길 기다리기보다 늘 먼저 뛰어갔다. 때로는 타이밍이 엇갈려 기다렸으면 좋았을 법한 적도 있었지만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무척 괴롭기에 늘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나에게 불도저 같다는 말도 하였고 그런 행동력으로 분에 넘치는 연애를 하기도 했다.
기다리지 않고 뛰어 나가기를 매번, 뜀박질이 쌓일 때마다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어느새 기브 앤 테이크를 계산하고 있었고 한쪽만 쌓여 불공평하게 침전하는 양팔저울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서글퍼, 더 이상 뛰지 않기로 했다. 연금술의 등가교환처럼 주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받는 것을 기다리는 게 사람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장애물이 있어도 밀고 나가는 불도저 같은 나였지만 상처 받기 싫어 점점 기다리게만 되었다. 무관심한 듯 앉아 있어도 제때 멈춰주는 지하철이 더욱 편해지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신과의 시간만 수북이 쌓였다. 연락이 오지 않아 섭섭할 마음을 지우려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다가가서 거절당하는 생채기를 남기고 싶지 않아 다가가지 않고 있었다.
쉴 만큼 쉬어서 일까. 기울어졌던 양팔 저울의 모습도 평행을 이루었다. 기다린 만큼 더 기다릴 수 있지만 그게 고독한 내 마지막 모습이 될 것 같아 먼저 뛰어가기로 결심했다. 상처 받고 아프기를 주저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 것일지도. 우람한 팔뚝도 근육이 찢어지고 다시 재생하는 과정에서 커져나간 것이니까. 혼자서 운명을 짊어지기에 벅찬 것을 알아버렸기에 상처 받을 걸 알지만 한번 떠 뛰어 나가자. 속도가 맞는 누군가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한 명을 위해 평생을 달려온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당분간은 망설이지 말고 먼저 뛰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