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축구에 대해 쓰기로 했다

by 훈재

브런치에 쓸 글감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아니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이 안됐는데 벌써 글감 부족이라니. 이 어찌 빈곤한 인생을 산 것인가. 멋진 세계 기행을 해본 적도 없고, 혹할만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재벌가의 자식도 아니고, 자식을 가진 부모도 아니고, 없고 아닌 게 너무 많다. 무(無)의 인생을 살아온 걸까. 다자이 오사무가 나를 본다면 '작가 실격'이란 소설을 집필할 것만 같다. 더 후비면 흉터가 남을 것 같으니 이쯤으로 축약하자. 의무감으로 글을 쓰고 싶진 않다. 달만 봐도 감성에 젖는 나이지만 글감을 위해 억지 감성을 쥐어짜고 싶진 않다. 글쓰기는 꾸준해야 늘게 되는 정직한 영역이기 때문에 공백기가 길어지면 안 된다.

뭐라도 좋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쓰고 싶은데..

기분전환이나 할 겸 보일러를 켜 온수 샤워를 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온수에 몸을 녹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떠올렸다.

유레카!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뛰쳐나왔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고민에 대한 해답은 '축구'였다.

거창하게 아르키메데스까지 갖다 붙인 것 같아 거슥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해답은 가장 가까이 있었다. 나의 일주일 과녁은 주말 밤 축구 경기에 향해 있다. 손흥민의 찐 팬인 나에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이 수학여행을 가기 전 짐을 싸는 설렘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그가 페널티 박스 밖에서 예리한 감아차기로 골망을 가르고 세리머니 하는 모습. 회사에서도 네이버 뉴스 1순위는 해외축구 섹션이다. 보고 또 본 손흥민 스페셜 정주행. 국내 축구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팀 경기는 놓친 적이 없고 케이리그 경기 또한 포항 스틸러스 팬으로서 직관도 종종 가는 편이다.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축구 얘기라면 질리지 않고 계속 써나갈 수 있겠구나. 무라카미 하루키도 '위스키'와 '티셔츠'에 대한 에세이를 내지 않았던가. '야구'도 그의 소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처럼 취미와 취향에 대한 글쓰기는 춤추듯 신명 나게 타이핑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은 생명이다. 오랜 생각과 성찰 그리고 개인의 철학까지 버무려진 한 편의 글은 내면에서 잉태되어 나온 내 새끼다. 태교 할 때 쇼팽의 녹턴 같은 편안한 음악을 아이에게 들려주듯, 태교처럼 좋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 사랑과 진심을 담은 글을 잉태해야지. 읽는 이로 하여금 쓴 자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고되어 취향이 희미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축구가 무척 고맙다. 오늘 밤에도 손흥민 경기가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며 오늘 밤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축구에 대한 모든 것을 쏟아내야지.

꽤 긴 장편 에세이의 서사가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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