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좌우명
어머니는 항상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남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살라고 하셨다. 오래전 회사 이직을 한 적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이직한 후 남아서 나의 일을 하며 사이코패스 이사 팀장에게 시달릴 진 대리를 생각하면 미안했다. 나를 특히 잘 따르고 친하기도 해서 근무 후 불러내어 저녁을 먹었다.
1차는 파전과 홍어 삼합을 시켜서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내가 계산했다. “2차는 제가 살게요. 대신 맥주예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각자 500cc 세 잔을 마셨다. 마시면서 회사 얘기, 자기 남친 얘기, 그 사이코패스 얘기, 그리고 당장 다가온 홍콩 전시회 얘기로 꽃을 피웠다.
진대리가 그녀가 될때
어느새 시간이 밤 10시가 다가왔다. 계산을 마치자 진 대리가 말했다. “저희 아파트 1층에 분위기 좋은 맥주집이 있어요. 한잔 더 하실래요?” 그 소리가 내 귀엔 천둥처럼 들렸다. 진 대리는 상경해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이걸 나도 알았고, 내가 알고 있다는 것도 그녀가 알고 있었다.
여기서 그녀의 집까지는 전철 타고 30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과, 그 3차를 마치고 귀가하려면 전철은 끊기고 택시비가 5만 원 넘게 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진 대리가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의 막내 멤버같이 보였다.
얼결에 그래 한잔 더 하자 하고 전철을 탔는데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왜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한 거지? 뭘 원하는 걸까? 정말 술만 먹고 끝날까? 라면 끓여 달래야 하나? 순수하게 한잔 더 하자고 했는데 괜히 라면 얘기했다가 쓰레기 되는 거 아니야? 잘됐다 치자, 그녀가 끈끈이 모드로 나오면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나는 어떻게 방어를 하지? 진짜 꽃뱀 아니야? 이러다 이혼하는 거 아니야? 아내가 애들 얼굴이나 보게 해줄까? 양육비와 생활비는 얼마나 되지? 어머니가 아내를 딸처럼 예뻐하셨는데 뭐라고 핑계 대지? 오만가지 상상이 '사랑과 전쟁'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머니의 질문이 계속 나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내 욕망과 이성의 다툼 속에서도 전철은 기어이 그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녀의 아파트 1층에 있는 분위기 좋은 맥주집에 갔다. 실내에 입구가 있는 맥주집이었는데 문은 여느 집과 같았지만, 보랏빛 조명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다.
연애라곤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여자들이 주는 숱한 추파와 제안을 자의 반 타의 반 뭉개왔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채는 전형적인 바보로 오랫동안 살았었다. 그러다가 연애를 많이 해보지도 못하고 결혼을 했다. 섬세하며 치열한 남녀 사이의 심리 게임을 뒤늦게 나이가 알려주었고, 가끔 과거 인연들을 추억해보면 숱하게 바보짓을 하며 살아왔구나 하며 혼자 웃는 경우가 많았다.
경계심이 심한 나는 결국 맥주 3차를 안전하게, 별 일 없이 마치고 매너 있게 그녀에게 치근대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리를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 전철 타기 전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무얼 마셨는지, 어떤 안주를 먹었는지 또렷한데 3차 맥주집은 조명이 좀 특이했다는 것 외에 뭘 얼마나 마시고 먹었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의 조각조차 없다. 하지만 간신히 막차를 타고 집에 왔던 것 같다.
인생의 즐거운 질문
나는 매너 있는 선배로 앞으로 더 잘해줘야지 개인적인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 안부 인사의 문자와 카톡은 읽지도 않고 금세 전화번호는 바뀌어 버렸다. 소식도 없이 사라진 그녀는 과연 나에게 어떤 걸 기대한 걸까? 생각은 하지만 이제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그녀의 기억에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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